인간은 행동양태에서 뿐만 아니라 의식구조에서도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시대도 환경이다. 간혹 정치 권력이 환경을 작위적으로 만들어 동시대 사람의 의식구조를 지배하지만, 결코 오래 가지 않는 것은 시대가 변하는 탓이다.■과거 독재 정권들은 이런 환경의 지배 법칙을 종종 이용했다. 장기집권이나, 반대 세력제거 등을 위해 사건을 만들어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그런 일이 많았다. 그 시절 권력에 의해 단죄됐던 사건들 중 상당수는 오늘날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73년 4월에 일어난 ‘윤필용사건’도 그런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사건은 잠재적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려 화근이 된 특이한 케이스의 사건이기도 하다. 이른바 괘씸죄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실력자였던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어느날 갑자기 파렴치범으로 몰려 군 감방에 갇혔다.
그가 육군 보통군법회의에서 업무상 횡령 등 8개의 죄목으로 징역 15년에 벌금 2,000만원을 선고 받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치사하게 군 부대의 돈을 떼어 먹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신문사 사주의 수재의연금 횡령 사실이드러났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건의 여파였다.
사주는 함께 쇠고랑을 찼고, 신문사는 그 뒤 영영 문을 닫았다. 나중에야 알려졌지만 윤필용 소장이사석에서 지도자를 한번 바꿔 보는 게 어떤가라고 운을 뗀 것이 사단의 발단이었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권력다툼이 원인 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오늘의 언론사태를 그런 사건에 대입해 바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없지는 않다.
지금의 시대적 환경에서는 어쨌거나 신문사 사주는 상습적으로 세금을 떼어 먹는사람들이다. 국세청이 조세권을 발동해 그렇게 밝혀냈고, 방송이 대대적으로 떠들고 있으며, 시민단체가 가세하고 있다.
바야흐로 언론개혁의 당위성 이목청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후사정이 어딘가 석연치는 않다.
혹시 신문사가 괘씸죄에 걸린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기는하다. 언론사태도 시간이 지나면서 보는 눈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떠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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