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앞바다 동국제강 헬기 참사는 임원들이 악천후를 무릅쓰고 현장 업무 수행에 안간힘을 쓰다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다.김종진(金鍾振ㆍ61)회장 일행은 이날 강풍과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대우조선 관계자들과 함께 철강재 가격협상을 위해 거제 대우조선을 방문을 강행했다. 이날오전 11시 김해공항에 도착한 김 회장은 이륙이 한동안 지연되자 간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제로 향하는 셔틀헬기에 몸을 실었다가 참변을 당했다.
■ 사고 순간
대우조선 소속 헬기가김해공항을 출발한 것은 오전 11시 13분께. 당시 인근 지역에는 시간당 70mm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해상에도 시속 5노트의 맞바람인 정남풍이 불고 짙은 안개가끼어 시계가 좋지 않았으며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하는 최악의 악천후였다.
폭풍우를 뚫고 운항하던헬기는 이륙 6분여 만인 오전 11시19분께 부산 신항 공사현장 상공을 지나던 중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면서 순식간에 바다로 곤두박질쳤다.
부산 신항 공사현장 효명건설직원 제철진(52)씨는 “폭우로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해 있는데 1㎞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헬기가 위로 뜨지 못한 채 몇 차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엔진이 굉음을 내면서 구름 속을 통해 상승을 시도하다 추락했다”고 말했다.
부산 동아대병원에 입원치료중인 기장 강익수(49)씨도 “갑작스런 악천후 때문에 저공비행하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순식간에 바다로 추락했다”고 말했다.
■회사·유족 표정
김 회장 등 중역들의 헬기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중구 을지로2가 동국제강 본사에 근무 중인 190여명 임직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측은 임원 4명을 사고현장으로 급파하는 한편, 장세주(張世宙ㆍ48) 사장을 대책본부장으로 비상대책반을 설치하고 사고 경위를 확인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동국제강은 1946년 설립된 중견 철강전문업체로 선박용 후판과 건축용철근을 주로 생산하고 있는 중견업체로 김 회장은 그룹내 조정역할을 담당하고 그룹 창업자인 고 장상태(張相泰ㆍ작고) 명예회장의 장남인 장세주 사장이 내부 경영을 맡고 있다.
한편 참변을 전해들은 부인서미강(徐美江ㆍ58)씨는혼절해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서씨는 이날 오전 김 회장이 지방 출장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서던 출근길에 “날씨가 궂으니 헬기는 타지 말라”고 까지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 했다.
급히 자택에 모인 딸 성희(成喜ㆍ33)씨와 아들 상태(常泰ㆍ31)씨 내외는 침통한 표정으로 속속모여드는 친척과 조문객을 맞았다. 사위 조우철(趙祐徹ㆍ33ㆍ회사원)씨는 “항상 인자하시던 장인의 변고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사고헬기와 승무원
사고 헬기는 미국 시콜스키사가제작한 것으로 1989년 도입됐다. 정원이 12인승인 이 헬기는 대우조선 임직원과 방문인사들이 주로 이용해왔으며 ,기체는 최고 375만달러,개인은 사망자의 경우 최고 50만달러를 보상 받을 수 있는 삼서화재보험에 가입해 있다.
기장 정재권씨는 99년 국내 민간헬기 조종사로는 처음 1만시간 무사고 비행을 기록했으며,부기장 강씨는 1972년 육군항공대 졸업 이후 지금까지 사고를 한번도 내지 않았다.
김창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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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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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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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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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3명 배 몰고나가 생존자 구해
“헬기가 바다에 추락했다!”
사고현장에서 1.5㎞가량 떨어진 연도에서 장대비를 맞으며 어선을 돌보고 있던 김강식(金康植ㆍ39ㆍ횟집경영)씨와 최상곤(崔相坤ㆍ41ㆍ어민)씨, 인근 부산 신항 건설 공사현장에 있던 효명건설 작업반장 제철진(諸鐵珍ㆍ52)씨 등 3명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소리를 외쳤다.
헬기가 곤두박질치는 것을 목격한 이들은 순간 자리를 박차고 선착장으로 달려가 김씨의 1.5톤짜리 소형어선 연진호에 올랐다.
“한사람의 생존자라도 구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장대비를 뚫고 육감적으로 배를 끌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폭풍우로 한치 앞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3분 여 만에 사고해역에 도착했을 때 헬기는 이미 바다 속으로 침몰해 흔적도 없었고 “살려달라”는 생존자들의 절규로 아비규환이었다.
해경 인명구조반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김씨 지휘로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4명의 생존자에게 빈 플라스틱 기름통을 던져 의지토록 한 뒤 6명의 시신과 함께 한 사람씩 배로 끌어올리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이들은 곧바로 휴대폰으로 119구조대에 신고하고 부두로 뱃머리를 돌렸다. 승선정원의 3배 이상을 태웠지만 정신없이 배를 몰고 5분만에 부두에 도착한 이들은 위급한 환자는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후송하고 사망자는 119와 해경에 인계했다.
탈진상태로 땅바닥에 주저앉은 김씨는 “당시에는 탑승자가 10명인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실종자가 2명 더 있는 사실을 알고 너무 안타까웠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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