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드라마다. 아마도 스포츠와 더불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흥미진진한 드라마일것이다. 특히 선거에 대한 관심은 그 직위에 부여된 권한과 영향력의 크기와 비례하게 마련이다.지금 국제스포츠무대에서는 지난해부터 진행돼온 한편의대하드라마가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무대는 제112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가 열리는 모스크바(13~16일ㆍ한국시간)이다.
모스크바총회가 과거 20여년의 총회와는 달리 각별한 의미를 갖는 까닭은 단 하나이다.새 천년의 IOC를 이끌어갈 새 위원장을 선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8대위원장 후보 5명중에서 김운용(金雲龍) IOC위원겸 대한체육회장이 가장유력하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더욱 안타깝다. 그나마 김 위원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서구언론의 논조가 이달들어 변하고있어 다행스럽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9일 발매될 최신호에서 김 위원을 ‘가장 유력한 후보(prime candidate)’라는 표현을 써서 그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총회 의제중에는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13일)이라는 사안도 포함돼있지만 세계의 관심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81ㆍ스페인)의 뒤를 이을 새 IOC위원장의 선출(16일)에 쏠려 있다.
IOC는 국제사회에 변혁을 일으킬 능력이 있고 실제로 지난 1세기 동안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위원장의 비전에 따라 변혁운동의 결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사마란치 현 위원장이 좋은 예이다.
그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1980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7대위원장에 선출된그는 지난 21년 동안 IOC를 이끌면서 국제체육계는 물론 국제사회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그의 위원장 재임중 IOC는 냉전의 벽을 허문계기를 제공한 88서울올림픽개최, 남아공의 국제사회복귀 등 많은 난제를 해결했고 그 중심에는 사마란치가 있었다.
차기 IOC위원장을 겨냥한 경쟁은 지난해 사마란치의 은퇴선언과 함께 수면위로 떠 올랐다. 김운용(70), 자크 로게(59ㆍ벨기에) 딕 파운드(59ㆍ캐나다) 아니타 디프란츠(49ㆍ여)팔 슈미트(59ㆍ헝가리) 등 5명의 IOC위원이 후보로 나섰다.
IOC위원장 선거는 국제사회의 서구우월주의 시각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사마란치를 중심으로 한 IOC이너서클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이런 움직임의 목표는 모스크바 총회가 다가올 수록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김 위원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순간 ‘김운용 끌어내리기’에 나섰다.
사마란치의 자크 로게 지지선언에 이은 방한(4월28일) 취소, 케빈 고스퍼(호주ㆍIOC부위원장)의 딕 파운드지지 선언 등IOC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김 위원은 탁월한 외교적 감각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IOC의 떠오르는 별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사마란치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위원장 후보로 하여금 IOC위원 개별접촉을 금지시키고 10여명의 아프리카출신위원을 유럽출신으로 교체하는 등 사마란치가 98년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부패스캔들을 만회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는 김 위원에게 더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김 위원의 가장 벅찬 상대로 등장한 자크 로게의 경우 벨기에 국왕의 해외순방 때마다 수행, 간접적인 선거운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IOC에서 떠난 10여명은 김 위원이 86년 I0C에 진입한 이래 크고 작은 의사결정에서 그를 지지해왔다.
IOC회원국은 200개, IOC위원은79개국 123명이지만 절반이상이 유럽(57)과 미주(24)지역 출신이다.
후보 본인을 포함해 같은 국적의 IOC위원은 투표권이 없다. 따라서한국 미국 캐나다 벨기에 헝가리 등 5개국 IOC위원 14명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 체육계와의 인연을 시작한 김 위원은 꼭 30년만에세계스포츠 수장의 자리에 근접해 있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술회한바 있다. “지금까지 겪어온수 많은 도전과 승부중에서 최대의 하이라이트는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었다.”
이제 그의 삶 앞에는 더 큰 도전과 승부가 기다리고 있다. 6일 모스크바로 떠나는 김 위원은 “마음을비우고 간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을까. 뒤늦게나마 그를 위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일은 없다. 국민 모두가 성원을 보내는 수밖에. 그리고 모스크바로부터의 낭보를 기다린다.
이기창 체육부장 lkc@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