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역시 현장에 있어야 하나 보다.빨랫 말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것을 “타는 즐거움” 이라고 했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레디고!’ 를 외치고, 녹초가 된 몸을 소주 한 잔으로 씻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투자자로, 제작자로 돈을 벌고, 후배 감독들을 발굴하고 시네마 서비스를 한국 최고의 영화사로 키우는 재미도 물론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 이에 견주랴. 어쩔 수 없이 감독인가 보다.”
‘공공의 적’ 으로 3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온 강우석(41) 에게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편안함이 느껴졌다.
2일 강원 동해시 옥계항 방파제에서 시작한 첫 촬영 현장에서는 늘 그를 바쁘게 몰아쳤던 시간마저 긴장을 푼 듯했다.
프롤로그 부문인 경찰 철중(설경구)의 동료가 마약 사건에 연루돼 자살하는 우울한 장면 만큼이나 잔뜩 찌푸린 날씨를 기다렸지만 시샘이라도 하듯 태양은 좀처럼 숨을 줄 몰랐다.
애타게 하늘 쳐다보기를 수 십번. 잠깐구름이 지나갈 때를 기다려 강 감독은 재빨리한 컷을 찍는다.
7시간 만에 겨우 두 컷. 짜증 한번 않는다. “진짜안 도와 주네” 라고 한마디 하고는 검은 천으로 햇빛을 가리고 나머지를 찍는다.
‘준비는 길어도 촬영은 짧게’. 명쾌한 강우석 영화의 느낌이 현장에서부터 나온다. “아무 걱정이 없다. 집 생각까지 잊을 정도” 라고 했다.
감독으로 돌아오면서 오히려 그는 투자한 영화와 이 영화에 대한 흥행 걱정을 털어버렸다. 자신감의 발로였다.
어차피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 아닌 ‘선물’ ‘신라의달밤’ 이 그렇듯 개봉 준비중인 9편도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공의 적’ 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적어도 자신까지 ‘흥행의 공포’ 에 사로잡혀 영화를 만들지 않을 만큼 자본도, 수익도 든든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강우석 감독이 처음 ‘공공의적’ 의 메가폰을 잡겠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자확인소송’ 에서 ‘신라의 달밤’ 까지, 그 동안 몇번이나 그는 감독 복귀선언을 해 놓고는 실천하지 못했다.
아마 이번에도 그랬다면 그는 ‘양치기 소년’ 이 될 뻔했다. 사람들은 겁을 먹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웃음과 흥행에 집착해 욕심을 냈다.
‘마누라 죽이기’ 나 ‘투캅스’ 처럼 만들면 관객은 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슨 예술영화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공공의 적’ 은 여전히 캐릭터가 분명하고 대사에 재치가 넘치는 강우석의 상업 영화이다.
다르다면 연쇄살인이 이어지는, 피가 흥건한 스릴러라는 것뿐. 그 속에 사회풍자를 담고, 그 풍자와 인물에 웃음이 숨어있다는 것도 같다.
“남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는 스릴러였다.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해 스릴러가 낯설지도 않다. 피와 엽기 속의 코미디도 가능하다.”
‘공공의 적’의 목표는 좋은영화이다. 강우석이 말하는 좋은 영화란 ‘표현력이 뛰어난영화’ 이다. “때문에 상업성을 위한 트릭은 없다.
철저히 연기로 가자. 관심 끌기 위한 카메오도 안 된다.” 설경구를 선택한 것도 ‘박하사탕’ 에서 보여준 그의 광기를 보다 대중적이고 감정적으로 펼치도록 하기 위함이다. ‘공공의 적’ 이 개봉될 내년 설날이면 관객들도 그의 광기를 다시 한번 그리워 할 것이 분명하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시나리오가 좋아, 남(후배) 주기 싫어서” “강우석, 감독 맞아요라는 소리 듣기 민망해서” 메가폰을 잡았고,아무런 부담이 없다는 강우석.
그러나 그는 3년 전 어정쩡하게 끝난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과달리 이처럼 ‘공공의 적’ 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준비했고 계산했다.다만 그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날카로운 ‘용의 발톱’ 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동해=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공공의 적' 어떤영화
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로 경찰에 특채된 강철중 경사(설경구). 돈 받고지명수배자 풀어주기, 마약조직에게서 마약 훔치기, 주먹부터 나가는 범인잡기 등, 그는 깡패보다 더 악당이다.
그가 명석한 펀드매니저로 살인을 재미로일삼고 흔적도 남기지 않은 ‘코리안 사이코’ 조규환(이성재)을쫓는다.
감정과 머리의 끈질긴 싸움이다. 그것도 일찌감치 서로를 알고, 늘 가까이서 부딪친다.거칠고 게으른 형사 역을 위해 몸무게를 8㎏이나늘린 설경구의 캐릭터 분석에 의하면 강철중은 철저히 단순 무식하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 역시 나쁜 놈이다. 그러나철중이 보기에는 조규환 같은 살인범이야말로 반드시 처단해야 할 ‘공공(公共)의 적’이다.
어차피 세상이란 정도만 다를 뿐, 나쁜 놈들 판이다. 때문에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공공의적’ 은 이렇게 섬뜩하고 위악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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