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추적을 피해 숨어 살았던 안네의 신세가 우리보다는 나았을 거예요.”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검은 피부, 큰 눈의 외국인노동자들이 최근들어 자취를 싹 감췄다. 법무부와 경찰,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18일부터 불법 체류 외국인에 대한 합동집중 단속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노동자는 30만여명. 이들의 75%에 달하는 23만여명의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불법체류 외국인)들은 자체적으로 ‘야간외출금지’, ‘휴일 두문불출’, ‘단속반출현시 줄행랑’등 자체 행동지침까지 만들고 기약없는 도피생활을 계속해 인권침해 논란까지 빚고 있다.
경기 김포시 셋방에서 부인,10개월 된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엠란(35)씨. 그는 지난달 23~25일 낯선 이국 땅 한국에서 가장 힘든 3일 밤을 보냈다. 밤마다 창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찾아오는 단속반에게 빈방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문을 잠그고 불을 끈 채 칭얼대는 아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 막아야 했다.
아이의 숨이 막힐 지도 모른다는 걱정보다는 단속반에 잡혀 수용소 생활을 한 뒤 추방당하는 공포가 더 컸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오후 7시 인천부평에 있는 셋방으로 퇴근을 하던 방글라데시인 알리(25)씨는 미행하던 사복경찰을 눈치채고 동료들이 있는 숙소 부근에서 ‘폴리스(경찰)’를 외쳤다.
샤워를 하고 있던 동료들은 신발을 신지도, 옷도 입지 못한 채 팬티차림으로 인근 바위산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불과 8개월여전 수천달러를 들여 불법 입국을 한 터라 붙잡힐 경우 감옥생활은 물론이고 평생 빚에 허덕이게 돼 도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들의 도움 요청을 받은 한국이주 노동자센터 직원들이 밤 12시께 바위산을 찾아갔을 때 일부는 발이 찢기거나 다리 곳곳에서 피가 나 걷지도 못할정도였다.
한국인 여성과 사실혼 관계에있으면서 3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미투(28)씨는 단속반에 걸려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할 ‘위기’에처해 있다 극적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사태가 이쯤되자 인권ㆍ시민단체등이 단속 중단을 촉구하고 나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느다란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차별철폐와 기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3일 낮 12시 외국인 노동자 200여명을 참석시킨 가운데 과천 정부청사앞에서 ‘정부의 무차별 단속 및 강제추방 규탄대회’를 열고 범정부적인 대책마련과 인권침해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법무부와 정부는 완고하다.불법체류 외국인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고 경기 침체로 국내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내국인들의 신고도 끊이지 않아 단속과 강제추방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1998년만 해도 불법 체류외국인들이 10만명선이었으나 현재 배이상 늘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며“이들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단속 외에는 다른 묘안이 없다”고 말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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