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천하’다. ‘태조 왕건’(KBS1토ㆍ일) ‘여인천하’(SBS 월ㆍ화)에 ‘명성황후’(KBS2 수ㆍ목)까지 가세하면서 시청률을 독식하다시피 한다.지난 주 시청률을 보면 ‘태조왕건’이 47.2%로 1위, ‘여인천하’가 43.0%로 2위, ‘명성황후’가 28.6%로 전주보다 한 단계 떨어진 4위를 차지했다 (18~24일,AC닐슨). 현대물로는 그나마 MBC 주말연속극‘그 여자네 집’이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사극천하’의 이유는 무엇일까.‘태조 왕건’ 책임프로듀서 안영동 부주간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갖게 되는, 현실에서 해소할 수 없는 불만을 과거의 인물을 통해서 대리 해소하는데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꼽는다.
혼돈의 시대라야 궁예(김영철)같은 카리스마가 빛나는 영웅호걸이 등장하기도 쉽다. ‘태조 왕건’은 후삼국의 분열을딛고 통일왕국 고려를 건설하는 과정을, ‘여인천하’는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 첨예화하면서 정쟁이 치열하던 중종 시기를, ‘명성황후’는 외세의 침략앞에 풍전등화처럼 위기에 처한 대한제국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결같이 갈등 구조가 명확하다.‘여인천하’의 정난정(강수연)은 ‘태조 왕건’의 궁예나 왕건(최수종), ‘명성황후’의 대원군(유동근)이나 명성황후(이미연)보다 카리스마는 약하다.
그러나 원작 월탄 박종화의 소설에 힘입어 주변 인물들과 첨예한 갈등을 겪으면서 누구보다도 극적인 삶을 엮어나간다.
사극은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고어느 정도 결과를 예견할 수 있어 현대극보다 안정감이 있다. 특히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토대로 하기에 시청자들은 내포된 갈등을 미리 예감하고 드라마에 집중한다.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이 본격화하지 않은 시점에서도‘명성황후’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과를 알고 진행과정을 퍼즐 맞추듯 짜 맞추어 가는 재미가 적지 않다.
사극은 끝임없이 ‘갈등’을 만들어낸다. 갈등의 정점이었던 궁예가 사라지면서 일시적으로 인기가 떨어지자 조기 종영설까지 나돌았던 ‘태조 왕건’은 견훤과 그 아버지 아자개의 갈등으로흥미를 유도했다.
그리고 견훤의 아들 3세대의 반목과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지는 세대와 권력을 장악하는 신세대의 대립으로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여인천하' 도 문정왕후와 경빈의 갈등이 조광조의 몰락을 계기로 하강곡선을 그리면 정난정과 문정왕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극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여인천하’가 궁중 여인들간의 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골격으로 하면서도 개혁정치를 주창한 조광조의 비중을 높인 것도 제작진 나름대로의 계산이 숨어있다.
SBS 이종수 드라마총괄국장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개혁' 문제를 일부러 자극했다"고 말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사극연출가들은 말한다.
사극에서 다루는 사실들은 표면적으로는 과거 완료형이지만,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 사는 이치는 시대를 초월해 같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형' 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그만큼 불안하고 불투명한 시대에살고 있음을 ‘사극 천하’ 가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