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난민고등판문관실(UNHCR) 농성’이라는 방식으로 서울로 온 길수 가족의 케이스는 중국정부로부터 탈북자 난민인정이라는과제를 여전히 남긴 채 마무리됐다.중국정부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길수 가족의 제3국행을 허용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도적 차원에서 불법 월경자 추방일 뿐, 난민지위 인정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정부가공산당 창당 80주년 행사, 2008년 올림픽 유치 등 안팎의 사정을 감안해 ‘편의주의적’인방식으로 이 사안을 처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사건이 향후 탈북자들에게 유리한 선례로 남을 것은 틀림없다.
중국측이 탈북자문제의 심각성을 재차 깨닫는 기회가 됐음은 물론 UNHCR이 긴급피난을 요청하는 탈북자를 제3국으로 유도하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특히 UNHCR가 길수 가족이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실상 난민 판정을 한 대목도 UNHCR의 탈북자처리 지침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난민인정을 통한 탈북자 문제 해결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중국 외교부는 사건 발발 직후 북중관계 등을 고려, “북중사이에 난민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이사건은 탈북자 난민인정의 절호의 기회였다”며 “UNHCR측이 길수 가족의 난민지위 요청을 중국정부에 정식으로 제기하고, 중국측이 이를 심사하는 형식으로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와 탈북자를 지원하는 국내외 각종 비정부기구(NGO)는 보편적 인권 개념에 입각해 중국정부가 탈북자의 난민지위 부여를 심사하도록 하는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사건의 파장은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3만~5만여명 탈북자들의 신변안전에 직접적으로 미칠 것으로 보여 정부의 대책이 요구된다.
벌써부터 중국 동북3성 지역에서 탈북자의 강제송환이 시작됐다는 게 NGO 관측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탈북자 대책은 중국측에 난민인정에 대한 전향적 자세를 촉구하는 한편 중국 내 기존 탈북자의 안전과 인권보호에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지금껏 견지해온‘조용한 탈북자 외교’에서 탈피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도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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