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름다운 고도강릉에서 태어났다. 온 집안에서 홀로 고향을 떠나서울 생활을 시작한아버지 덕에 학교는서울에서 다녔지만 방학이란 방학은 거의 깡그리대관령 기슭과 동해바닷가에서 보냈다.지금은 강릉비행장 확장공사 때휩쓸려 넘어지고 없지만, 예전에는 내가 태어난 바로그 집이 늘날 기다리고 있었다.
뒤뜰의 자두나무도 내 혀밑을 간질이며 기다렸다. 자기가 태어난 강줄기를 찾아그 먼 바다를헤치며 돌아가는 연어처럼 난 그렇게 늘그곳으로 돌아가곤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시원하게 고속도로가 뚫려 있는것도 아니라서 강릉에가려면 언덕길마다 숨넘어가듯 콜록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대관령 구비 구비를넘거나 완행열차를 타고반나절 이상 태백산맥의 허리 밑을 돌아가야만 했다.
어려서는 별나게 멀미가심해 버스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던 나는방학이 시작되기 무섭게그 이튿날 꼭두새벽이면 어김없이 서울역 개찰구에 줄을 서곤 했다.
나는 꿈속에서도 종종그곳으로 돌아간다. 소나무 숲가장자리를 휘몰아 돌아선후 감나무 밑으로걸어 올라가는 내모습을 요즘도 일년에꼬박 몇 번씩은본다.
무엇이 날끊임없이 그곳으로 잡아당기는 것일까.무엇이 우리를 자꾸만자연으로 돌아가게 만드는것일까.
하버드 대학의생물학자 윌슨 교수에따르면 자연을 사랑하고 더불어 살고 싶어하는 성향이 이미 우리유전자 속에 있다고한다.
그런데 그런자연이 이제 우리곁을 떠나려 한다. 아니우리가 그런 자연을저만치 끊어내려 하고있다.
방학이면 늘 개울에서 고기를 잡고 논에서농병아리를 좇던 나였기에 생물학을 하게 된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물학중에서도 꼭 환경생물학 즉 생태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하던 독서 동아리에서 ‘로마보고서’를읽고 난 다음이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그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환경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을모르는 이는 없다. 다만이젠 어떻게 해야환경을 보호할 수있는가를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가끔발견되어 심심찮게 얘깃거리가 되곤 하는 패총을다 알 것이다. 옛사람들의 생활을 엿볼수 있는 좋은사료이기에 고고학자들의 관심을끈다.
하지만 패총이무엇인가. 지금으로 말하면다름 아닌 난지도이다. 한동안 어느 지역에살다가 그곳에 먹을것도 떨어지고 환경도지나치게 오염되었다 싶으면그 동안 까먹은조개껍질들 위에 가지고가지 않을 허섭스레기들을 버리고 간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가장잘 착취할 줄아는 동물이다. 그랬기 때문에오늘날 만물의 영장이되어 거들먹거리게 된것이다.
그러나 우리유전자 안에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그속에서 살고 싶어하는 성향은 들어 있을지모르나 그 자연을아름답게 있는 그대로보전하려는 성향은 없다.
옛날우리 조상이 동굴속에 살던 시절생활태도가 사뭇 다른두 가족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한 가족은 동굴안에 쌓이는 오물과쓰레기를 치우느라 하루에도 몇 시간씩 허비하는 동안 다른 가족은그 시간에 나가노루라도 한 마리더 잡아들이다가 어느날 동굴이 너무더럽다 싶으면 다른깨끗한 동굴을 찾아이사를 가버렸다고 하자.
어느가족이 더 잘먹고 잘 살며자식도 더 많이낳았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우리 인류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구태여 열심히자연을 보전하며 다분히소극적으로 산 것이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자연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정복하며 살아왔다.
다만 이제는버리고 옮겨갈 동굴이없기에 문제가 된다. 이미다른 동굴에도 다른가족들이 살고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신하느님의 축복으로 너무지나치게 성공해버렸다. 하나밖에 없는지구다.
이곳에서 함께사는 길은 배워서터득할 수밖에 없다. 우리만 살다 사라지면 그만인것도 아니다. 우리 자식들도 최소한 우리가 누린만큼은 누리고 살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유전자 안에도 없는성향을 버릇처럼 만드는일이 결코 쉬울리 없다. 끊임없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이우리 모두가 살길이다. 모두 생태학적 세계관으로 재무장해야 할때가 되었다. 관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아직방학을 하지 않았지만 대학 교정은 벌써을씨년스럽도록 비어간다. 나는 어젯밤또 고향에 가는꿈을 꿨다.
감나무 밑으로걸어 들어가는데 할머니께서 부엌에서 뛰어나오시며 “어머야라, 야가어떠 완” 하시며 와락 끌어안으신다. 열살 남짓한내가 그 먼길을 혼자 온것에 대해 놀라시는 모습이다.
외양간 안의 황소가날 반기며 음매하는 소리에 잠에서깨었다. 할머니는 지금오랜 지병으로 임종을바로 코앞에 두셨다.
이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좀더 건강하셨을 때자주 찾아 뵙고돌봐드릴 걸. 병들어 신음하는 자연도 자꾸 손을놓으려 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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