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의 윔블던 테니스 무대인 올잉글랜드 론테니스 클럽에는 테니스박물관이자리잡고 있다. 5파운드를 내고 들어가면 배드민턴 네트 높이와 사다리꼴로 생긴 코트에서 테니스의 모태가 된 ‘스티키(Sticky)’에 열중하고 있는 귀족들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만큼윔블던 테니스는 영국인의 자부심 그 자체다.하지만 영국인들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다. 막상 큰 잔치를 열고도 800만파운드가 넘는 대회 상금과 명예를 다른 나라에 빼앗겨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빗대 ‘윔블던효과’로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1936년 프레드 페리가 남자단식, 100주년 행사가 열렸던 77년 버지니아 웨이드가 여자단식에서우승한 이후 영국인챔피언은 자취를 감췄다.
도박사들은 ‘영국테니스의 희망’ 팀 헨만(27)의 우승확률을 6대1, 여자단식 우승확률을 500대1로 예상,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또 주관방송사BBC의 방송해설자는 단골메뉴처럼 “선전했지만 이기지 못했다”는 멘트가 필요했고, 연례행사처럼 ‘영국 주니어 테니스를 키우는 길’에 대해 토론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센터코트 로열박스를 찾은 것도 77년이 마지막이었다.
이런 영국인들은 28일 새벽(한국시간) 극도로 흥분했다. 세계 176위 배리코완(26ㆍ영국)이 1번코트에서 열린 남자단식 2회전서 윔블던 최다우승을 노리던 피트 샘프러스(29ㆍ미국)와 맞대결, 풀세트 접전 끝에2_3(3_6 2_6 7_6 6_4 3_6)으로 아깝게 패했기 때문이었다.
샘프러스가 윔블던 잔디코트에서 5세트 경기를 치른 것은 3년 전 고란이바니세비치(30ㆍ크로아티아)와의 결승전 이후 처음이다. 2시간52분 동안 혈투를 끝낸 코완은 마치 승자처럼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샘프러스는황급히 라커룸으로 향했다. 또 이날 헨만과 ‘강서버’ 그렉 루제드스키(28)가 동시에 3회전에 진출, 우승에대한 기대가 조금씩 늘었다. 과연 영국인들의 오랜 바람이 올해는 이뤄질 지 관심을 끈다.
정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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