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글을 모아 산문집이라고 내놓는 게 비일비재한 오늘, 버릴 것 없는 알짜배기산문집을 보는 것은 반갑다.중국 동포작가 김학철(75)씨의 ‘우렁이 속 같은 세상’을읽는 재미는 평생 남다른 파란곡절을 겪고도 꼿꼿함을 잃지 않은 노작가의 당당한 기백과 여유에 있다.
불의와 비겁을꾸짖거나 세태를 풍자하고 현실을 비판할 때는 날카롭고 준열하며, 지난 인생 역정을 돌아볼 때는 푸근하고 솔직하다.
순우리말과 우리말 속담을 곳곳에적절히 써서 풍성함을 더하고, 신선한 위트로 슬며시 웃음짓게 만든다.
그는 일제시대 조선의용대원으로 중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포로가 돼 일본 감옥에갇히고 거기서 총상 후유증으로 한 쪽 다리를 잘라냈다.
해방 후 북으로 갔다가 정권 비판이 문제가 돼 중국으로 망명했으나 문화혁명기에 다시 반동분자로몰려 24년 강제노역과 10년 징역을 살았다.
장편소설 ‘격정시대’ ‘20세기의 신화’ ‘혜란강아말하라’, 소설집 ‘무명소졸’,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등으로 잘 알려져있다.
‘우렁이…’는 중국 동포사회 매체인 ‘장백산’ ‘연변일보’ 등에 발표한 100여 편 산문 중 28편을 골라 엮은것이다.
1부는 작가의 근황, 항일 독립운동 시절과 문화혁명기 옥고를 치르며 겪은 일화 등 개인 체험과 관련된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귀여운손녀 앞에 꼼짝 못하는 할아버지,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남편, 난생 처음 들어간 호화 호텔에서 생고생을 하는 촌 노인 등작가의 인간적 면모도 보인다.
2부, 3부는 사회와 세태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글이 대종을 이룬다. 산짐승보다못한 인간 세계의 이기주의, 코딱지 만한 잇속을 놓고 벌어지는 이전투구, 엉뚱하게도 전화번호 숫자 때문에 반동으로 몰렸던 문화혁명기 중국의 추악했던세태, 늦바람이 나서 조강지처를 버리는 노인들의 망령, 안락을 찾아 스스로 창살 없는 감옥을 택하는 정신적 수인(囚人), 감투라면 사족을 못쓰는 벼슬중독증 등 못나고 비굴한 모습들에 매섭게 욕을퍼붓는다. 에두르지 않고, 곧장 날아가 꽂히는 말이 시원하고 통쾌하다.
4부는 문단에 얽힌 이야기와 글쓰기 태도, 독립운동사를 사실보다 왕창 부풀리는과대망상증 등을 쓰고 있다.
조선의용대장 김원봉 열사의 고향인 경남 밀양의 밀양문화원 초청으로 이달 초 고국을찾은 그는 지금 서울 적십자병원에 입원해 있다.
건강 검진을 위해 위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식도를 다쳐 치료 중인데, 치료를 마치는대로 내달 초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김학철지음ㆍ창작과비평사 발행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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