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주지하듯이 권력의 횡포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고 이에 맞서 이념이 포효했던 시기였다.이러한 시기에 신화나 상상력에 관심을 갖는 일은 문제의식의 부재, 현실로부터의 도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신화를 전공한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반응은 대개 ‘한가로운 취미주의자’라는 인식이기 십상이었다.
중국신화의 경우는 좀더 심했다. 중국의 학계에서는 신화를 인류의 자연에 대한 투쟁의 결과로 보았기때문에 모험적, 공격적 성향의 신화내용이 아니면 모두 미신이나 낙후된 의식의 산물로 간주했다.
중국의 상상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신ㆍ도교 이야기도예외는 아니었다. 장생불사ㆍ신선세계ㆍ도술 등의 상상력은 민중의 이익과는 무관한 귀족계급의 백일몽으로 여겨져 온당한 연구대상이 되질 못했다.
게다가전통적으로 유교에서는 상상력을 불온한 세력으로 규정해오지 않았던가? 정말 중국의 상상력 연구는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이 때 접하게 된 책이 뒤랑의 ‘상징적 상상력’이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마치 천군만마의힘을 얻은 것처럼 느꼈던 것은 서구에서의 상상력에 대한 억압의 역사를 통해 오늘의 학문인식을 이해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우리가 통념적으로생각해 온 것처럼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고 과학까지도 포용하는 역동적인 힘을 지닌 실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뒤랑은 서구의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의 폐단을 비판하며 말살된 상상력의 복권을 재신화화에 의해 이룩하고자한다.
여기에서 그는 이른바 ‘동양에의 의뢰’를 요청하는데 그것은 전세계적인 상징체계의 균형잡기를 실현하기 위해 동양의 이미지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태도이다.
뒤랑의 이러한 견해들은 중국의 상상력을 연구하는 의의를 보다 분명히 해주었고 세계 상상력의 차원에서 재고하게 하는 계기를 부여하였다.
물론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의 뒤랑이 지녔던 한계, 즉 상상력의 지나친 논리화라든가 동양에 대한동정적 오해(?) 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상력의 실체와 가치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던 그 작은 책자의 큰 힘, 그때의 감동을잊을 수 없다.
정재서(이화여대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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