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발표된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두고 공방이 뜨겁다. 국세청이 23개 언론사에 5,056억원을 추징한 것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조사”였다고 주장하지만 야당과 일부 언론사들은 “언론사 규모에 걸맞지 않은 과도한 추징금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조사”라고 반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찬성] 언론도 기업, 조사는 필수…
봉급생활자는 월급날을 기다리지만, 월급봉투에서 꼬박꼬박 떼어지는 세금을 보는 건 두려운 일이다. 납세의 의무는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부담일 것이다.
그러나 1조3,600억 원에 달하는 언론사 탈세 사실을 접하면서, 어렵사리 세금을 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어떤 심정일까, 또 사회정의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현장을 뛰어다니는 기자들의 사명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자유시장경제는 합리성과 공정성을 기본전제로 한다. 만약 게임이 공정하다고 믿지 않게 되면 누가 법을 지키려고 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자유경제시장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언론에는 두 측면이 있다.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권력을 감시하고 공정한 여론을 형성함과 동시에,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으로서의 기능과 지켜야 할 의무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언론의 자유, 편집의 자율성은 어느 누구도 간섭해선 안되지만, 기업으로서의 언론은 자유시장경제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모든 기업이 받게 되어 있는 정기적인 세무조사를 언론기업이라고 해서 받지 않거나 특혜를 요구한다면 이는 시장의 논리에 배치된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차기 정권재창출을 위한 언론 길들이기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어떤 정부가 언론사에 세무조사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임기 몇 년째에 세무조사를 해야 정권재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닌지, 5년마다 하게 돼있는 세무조사를 언론사에 대해서는 영원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가 94년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를 하고도 그 결과를 덮어버린 채 추징금을 깎아준 범죄행위에 대해서 왜 당시 집권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은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는지도 묻고 싶다.
어떤 야당 의원들은 이런 정도로 세무조사를 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언론이 어디 있겠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읽히지도 않고 버려질 무가지 10만부만 찍지 않아도 연간 48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어떤 언론학 교수의 주장을 감안한다면 역시 언론기업이 살아 남는 길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업운영에 있는 것이다.
“권력이 우리로부터 앗아가려는 것은 돈이 아니라 바로 언론의 자유이고 기자로서의 최소한의 명예와 긍지”라고 27일 한 신문사 기자들이 성명을 발표하였다.
사회정의와 공정언론을 추구하는 기자들의 상황인식이 만약 이와 같다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만약 언론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갖고 있다면 그들은 다른 동료 언론인들의 다음과 같은 다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언론도 정상적인 세무조사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세무당국의 조사활동에 적극 협조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 이것은 앞으로 언론사로서의 어떠한 특권도 도모하지 않고 언론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겠다는 다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정범구 민주당 의원
[반대] 상식 뛰어넘는 목조르기…
결국 예상했던 대로 현 정권은 이번 세무조사를 기회로 비판 언론에 대한 본격적인 목조르기를 시작했다.
우리 한나라당은 처음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이후 벌어진 일련의 언론 관련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해왔다.
그 이유는 당시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언론사 조사가 순수한 세금징수나 불공정거래행위 조사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에 대한 조사는 당연한 조치이기 때문에 언론사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불순한 목적에서 시작될 경우 법이라는 미명하에 내려지는 권력의 법 남용행위요, 민주주의 질서 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2월부터 시작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역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손보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세무조사 자체가 아니라 그 의도에 반대한 것이었다.
^ 우선 중소기업 규모에 불과한 언론사에 대해 서울지방 국세청 조사국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400명이라는 초유 규모의 인원이 동원됐다는 것, 장장 132일이라는 기간에 걸쳐 법인세 징수를 위한 법인 조사뿐만 아니라 언론사 간부, 심지어 일반 기자들의 신상까지 파헤치는 상식을 뛰어 넘는 조사를 했다는 점이다.
특히 그 시기가 정부의 거듭된 실정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던 시점이었고, 정부에 대한 여론이 나빠진 데에는 언론도 책임이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였기 때문에 더욱 더 그 의도에 대해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애초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발표가 있자 많은 국민들과 식자층에서는 결국 이번 세무조사는 언론사의 탈루세액에 대한 추징으로만 끝나지 않고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의 사주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올가미를 씌울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었다.
비판언론사에 대한 세금추징만 가지고는 정부 권력의 당해 언론사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수 없기 때문에 언론사와 사주의 부도덕성을 크게 부풀리고 부각시키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는 추측에서였다.
이것은 1999년 폭로된 여권의 소위 ‘언론장악 문건’의 내용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결국 애초 우려했던 대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 사주 구속설이 나돌고 있는 것 또한 정부 여당의 음모가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 여당은 정도세정이니, 법이 정한대로 합법적으로 처리했다느니, 언론사도 예외가 돼서는 안된다느니 등의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게 가고 있다.
일선 기자들의 신상까지 들추고, 그동안 하지 않던 세무조사를 정부 비판이 거세지자 느닷없이 실시하고, 탈루 방법까지 상세히 발표함으로써 전 언론을 부도덕하고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세무조사를 합리적이고도 현명하게 종결지어야 할 것이다.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
■언론사 세무조사 쟁점은
20일 국세청의 세무조사 발표에 이어 언론사와 언론사주에 대한 고발이 임박함에 따라 언론사 세무조사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는 여러 모로 파격적이었다. 132일 동안 총인원 1,000여명이 투입돼 5,026억원이 추징됐다.
총 탈루세액은 1조 3,594억원. 23개 언론사와 63개 관련 계열기업의 법인세로 3,229억원, 언론사 대주주 및 관련인에 양도소득세, 증여ㆍ상속세 등으로 1,827억원이 부과됐다.
^첫번째 논란은 기업 규모에 걸맞지 않은 과도한 추징금 문제. 중소 기업 규모에 수익을 그다지 내지 못하는 언론사에 재벌급 수준의 추징금이 부과됐다는 것이다. 1
991년 현대 세무조사 때는 1,361억원, 93년 포항제철은 739억원이 부과됐다. 국세청은 공정한 조사에 따른 것으로 추징금이 많은 것은 그만큼 탈세 행위가 만연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동안 관행으로 여겨졌던 무가지(無價紙)를 과세 대상에 포함시키 는등 무리한 추징이 이뤄졌다는 반발이다.
형평성 문제도 논란거리다. 언론사별 추징금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추징금이 특정 언론사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야당측에서는 “언론사 매출액의 몇 배가 넘는 방송국은 사실상 비켜나 있는 대신 현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사만이 집중적 타깃이 된 것 아니냐”고 항의한다.
하지만 국세청과 여당측에서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세무조사를 실시했을 뿐 특정 언론사를 겨냥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고있다.
절차적인 문제를 떠나 이번 세무조사는 현 정부의 언론개혁 과정에서 불가피했다는 시각도 많지만 일각에서는 ‘특정한 목적’에 의해 이뤄졌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올해 초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천명한 후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잇따라 착수됐다.
정부는 이를 부패한 언론 권력을 투명하게 만드는 개혁의 과정이라고 보는 반면, 야당측에서는 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의 입을 막으려는 ‘언론 탄압’으로 보고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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