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가 한러 공동성명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파문을 처리하면서 비상식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28일 외교부 정기인사에서 상부지시로 ABM 파문의 진상보고서를 작성한 실무자만을 문책한 것은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바라는 기대에 크게 어긋난다.
외교부는 문서가 적시한 대로 실무자들의 업무 미숙, 태만, 복무기강 해이 등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문서 작성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사태를 미봉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외교부는 엄청난 외교적 국익손실을 가져온 업무과실에 대해 자성의 토대위에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를 어물쩍 넘길 경우 외교부의 근무기강이 해이돼 유사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 외교부의 조치
한국일보가 14일과 15일 ABM 파문의 진상을 조사한 문서를 단독 입수해 보도하자 정부는 관계관 회의를 열어 문서 유출 경위를 파악했다.
외교부도 자체 조사를 통해 문서 유출에 관한 정밀 점검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고 장ㆍ차관이 경질되는 등의 파문을 자초했던 실무간부들의 책임은 언급되지 않았고 외교부는 문서의 내용을 부인하기에 급급했다. 이는 공직사회의 이기주의 행태로 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외교부는 문서유출 경위 조사에서 문서를 작성한 신모 과장 등이 유출에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한국일보에 보도된 문서는 외교부 실무진이 작성한 문서와 부합한다”며 “하지만 문서를 유출한 당사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인사의 문제점
문제는 문서유출의 책임이 없음이 확인된 신모과장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문서내용이 보도되자 외교부 안팎에서는 문서유출을 정기 인사를 앞둔 내부갈등설에 연결시키는 등 본질과는 거리가 먼 여러 얘기들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정작 책임을 져야 할 파문의 당사자들은 그대로 있고 상부지시로 문서를 작성한 신모 과장이 희생양이 됐다. 외교부의 조치는 지시에 따라 실체를 파악하려했던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주었고 이는 결국 공직사회의 보신주의를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 외교부 내부 반응
외교부의 한 직원은 “과장 자리에 있는 사람을 과원으로 사실상 강등시킨 것은 외교부의 자체 징계”라고 말했다.
외교부 직원들은 “대통령의 유감표명까지 불러온 이번 파문은 가볍게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다”며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직원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은 것은 본말이 전도된 처사”라고 지적했다.
■ 한국일보 보도
한국일보는 14일자 보도에서 공동성명 작성에 관여했던 외교부내 외교정책실, 구주국, 북미국 등의 간부의 실명을 거명하고, 이들에 대해 징계처분이 필요하다는 문서의 내용을 실었다.
15일자에는 한러공동성명 발표후 미국이 강한 항의를 전달하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NMD)를 지지해 달라고 우리정부에 노골적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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