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숙여 큰절을 (김대중 대통령께) 백번 천번 올리오니 눈물로 쌓인 우리 탈북자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 26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사무소로 피신한 장길수(17)군 가족은 탈북후 죽음을 무릅쓴 도피생활 중에서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등에게 보낼 피눈물의 편지를 써놓아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 있다.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진 길수군의 삼촌 김광철(27)씨는 수감전인 지난해 8월 중국에서 김 대통령에게 쓴 편지에서“탈북자 15명 우리 가족은 좁은 집에서 갇힌 생활을 하며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가기를 원한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현재 자신의 처지를 짐작했던지 “북한에서는 우리 모두를 정치범수용소에 처넣고 죽일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로 피신한 7명의 가족에 끼어있는 길수군의 형 한길(20)씨가 보낸 ‘김정일 장군님께’로 시작하는 편지엔 배고픔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고향을 등져야 했던 원망과 냉소가 짙게 배어 있다.
“장군님이 이밥(쌀밥)에 고기국을 드실 때, 외국산 고급 술을 마실 때… 조선인민을 식인종으로 만드실 작정입니까… 덕분에 암흑의 땅에서 벗어나 감사드립니다.”
지난 5월29일 길수군이 구명운동본부로 보낸 편지는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한다.
“수시로 조여드는 감시와 조사 속에 숨쉬기도 힘듭니다.” 길수군은 편지에서 “큰아버지(구명운동본부 문국한(文國韓) 국장)를 친아버지로 큰어머니(가족을 도왔던 조선족 황모씨)를 친어머니로 모시고 너희들이 꿈속에서 그리던 자유 대한민국으로 꼭 가라.”는 내용의 어머니(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중)의 유언도 전했다.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 관계자는 “길수가족들은 지난해 6ㆍ15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인 8월 희망과 눈물의 편지를 작성했으나 도피중이어서 보내지는 못했다”며 “온 겨레가 감동에 잠겨 있었을 그 시각 길수 가족은 누추한 피난처에서 생존을 위해 펜을 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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