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작가 토스토예프스키의 장편 소설 '악령'(惡靈)은 무신론적 혁명 사상에 경도된 이들에게 파멸의 재앙이내리는 과정을 그렸다.반세기 전 이 맘 때 적화 통일을 외치며 전쟁을 도발한 북한도 스스로 도탄에 빠졌으니, 혁명의악령에 홀린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올 6.25 무렵 바다의 뱃길과 경계선을 놓고 북한과 실랑이를 벌인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이념과 전쟁의 악령이 떠돌고 있는것을 본다.
북한에 대한 적대를 어디까지 허물고, 민족 화해를 위해 얼마나 양보할 것인지를 둘러 싼 논란은 도무지 이성과 합리와는 거리 멀다.
북한에 대한 인식이 엇갈려 우리끼리 적대하는 지경이라면, 우리 사회도 비극을 부르는 악령에 사로 잡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제 항로인 제주해협 영해를 북한 상선이 지나가겠다고 떼 쓴 것은 놀랍지만, 이걸 곧장 도발로 여길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거기까지와서 도발할 만한 변변한 군함도 없지만, 군함 아닌 상선이 잇따라 단독 시위를 벌였으니 거기에 맞게 대처하면 될 일이었다.
뒤늦게 일반에 알려졌듯이국제해사(海事)기구에등록된 상선이 특정한 위해(危害)행위를 하지 않는 한, 강제로 뱃길을 막는 것은 국제법 질서에 어긋난다.
이런 사리가 생소한 것은 남북이 바다의 질서에 관한 국제 관습과 동떨어진 대치상태에 있었던 탓이다.
그 비정상적 대치에 원죄가 있는 북한이 제편한 대로 국제법 원칙을 주장한 것은 괘씸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지하기 힘든 덩치 큰 상선에 포라도 쏘았다면, 국제적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다.
당황한 정부가 미리 통보만 하면 무해(無害) 통항을 허용하겠다고 일방적 양보를밝힌 것은 경솔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이 ‘주권과 안보 포기’라며 강경 대응을 외친 것은 한층 무분별하다.
특히 평화를 강론해야 할 학자들까지 남북 특수상황이국제법 질서보다 우선한다고 떠든 것은, 보신을 위해 무조건 보수 쪽에 줄 서는 한심한 행태다.
군 수뇌부 골프 파문이 겹쳐 정부가 몰린 상황에서 터진 북한 어선의 북방한계선(NLL)침범 사건은 논란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북한어선에 총 몇 발 쐈다고, 그토록 질타하던 군을 모두가 칭찬한 것은 코믹하다.
군이 별 것 아닌 사건을 부풀린 심정은 이해하지만, 나라가 흔들린다고난리 치던 야당까지 흐뭇해 하는 건 마치 아이들 장난 같다.
북한 어선은 짙은 안개 낀 어둠 속을 표류하다가 경계선을 넘었을 것이다. 방향탐지장비가 없는 9톤짜리 어선이 육안으로 방향을 찾을 수 없을 때는 기관을 끄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정지한 채 고기를 잡다가 조류에 떠밀렸을수도 있다. 횃불은 안개 속 충돌을 막거나,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바다 사정을 아는 이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고작 5명이 탄 어선이 중무장한 우리 고속정에 햇불과 각목을 휘두르며 저항해 경고사격했다는 발표는 나 홀로 병정놀이를 보는 듯 하다.
석유등도 켜지 못한 피폐한 북한 어부는 돌아가 남조선 해군이 거칠게 표변한 사실을 수다스레얘기했을 것이다.
2년 전 연평 해전이 그랬듯이, 남쪽은 너그러운 큰 형님이 아니라 욕심 사나운 놀부라고 욕할 법 하다.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보잘 것 없는 어선의 우연한 월선 조차 우리 안보의지를시험한다고 의심하는 것은 병적이다.
남북 군사력 균형, 특히 해상 전력은 오래 전 우리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이를 입증한 연평 해전 때, 우리해군 사병은 굶주린 북한 수병의 죽음을 동정했다. 나 어린 그들에게 국방 일선을 맡기고 뒷전에 앉아 총성에 박수치는 것은 몰지각 하다.
보수 이데올로기를 고취하기 위해 불필요한 포클랜드 해전을 감행한 대처 영국 총리는정치 목적으로 숱한 인명을 희생시킨 부덕이 역사에 기록됐다. 우리 사회 보수 세력도 진정 역사의 대세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전쟁의 악령부터 떨쳐내야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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