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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그 죽음들과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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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그 죽음들과의 화해

입력
2001.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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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이라고 다짐해온 세대가 아니더라도 이 날을 잊기는 어렵다. 51년 전 6월 25일에 발발한 그 전쟁은 21세기 첫 해인 올 6월 25일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런 뜻에서, 한반도에 발붙인 우리 민족에게 6ㆍ25는 천형(天刑) 그 자체 일지 모른다. 형기도 시효도 없이, 용서받지도 화해하지도 못한 채,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는 지금도 피가 흐른다.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서 일단의 시위대가 6ㆍ25를 ‘기념’했다.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회원들이 25일을 맞아 벌인 집회다.

이들은 전 날인 24일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빚어진 민간인학살사건 등을 포함한 미국의 개입과 한반도 정책에 대해 “유죄”평결한 ‘코리아 국제 민간법정’을 열었었다.

6명의 공동검사단을 대표한 클라크 램지 수석검사(존슨 대통령 당시 법무장관 역임)는 기소장에서 한반도에서의 미국에 의한 민간인 학살 규모를 “30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6.25에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서는 25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가 의미있는 발표를 진행했다.

17년 전 청송교도소에서 ‘의문사’한 한 청년의 죽음을 ‘교도관들의 폭행에 의한 타살’로 최종 확인한 것이다.

발족 6개월여 만에 공식적으로 밝혀 낸 첫번 째 ‘죽음의 진실’이다. 이 ‘진실’은 우리 사회를 화해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밑거름으로서의 뜻을 지닌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얼마 전 국회 본회의에서는 40년 넘게 국회 지하서고에 파묻혔던 피맺힌 문서 하나가 한 여당의원에 의해 발굴ㆍ공개됐다.

1960년 4대국회에서 활동한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의 24권, 7,000쪽에 이르는 보고서다.

이 육필 기록은 한국전쟁 중에, 또는 전후해서 이 땅 곳곳이 온통 ‘킬링 필드’ 방불한 증오와 보복과 살육의 땅이었음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국회 특위는 3개 반으로 나뉘어 불과 11일동안 활동했으나, 피학살자의 신원과 학살 경위를 낱낱이 기록으로 남긴것이 8,522건에 이른다.

4ㆍ3사건, 여ㆍ순사건을 비롯해서 보도연맹사건, 형무소 수감자, 부역혐의자, 공비토벌, 무고한 피난민 행렬…등, 이 모든 사건들에서 민간인집단에게 가해진 대량살육은 한결같이 ‘국가폭력’ 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 숫자가 모두 100만명이 될지 300만명이 될지는 추정방법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전쟁이야말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이 공공연히 자행된 야만적인 전쟁”이었다는 사실뿐이다.

북한 외교부 대변인이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침묵을 깬 언급이라는 점은 진전이지만, 시기가 ‘언제’일는지는 아직 안개속이다. 언제나 안타까운 현실은 남북간의 문제와 그 문제를 푸는 일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그 향배에 전적으로 매여있다는 인상을 주는 점이다.

최근까지 이 정부의 각료였던 한 경제학자가 한 월간지에서 기발한 ‘꿈’을 펼쳐보인 것이 눈길을 끈다.

그의 꿈은 “한반도를 21세기 세계평화의 성지로” 만들기 위해 남과 북이 ‘세계의 의표를 찌르는’ 드라마를 연출하자는 것이다.

그 드라마는 두 지도자가 카터, 만델라 같은 국제적인 평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들과 NGO들 앞에서 ‘평화선언’을 하면서 동북아 전체의 비핵지대화와 미사일 포기를 촉구하고, 나아가서 ‘21세기 평화는 한반도로 부터’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세계적 군축과 핵개발 중단, 미국의 MD계획 중단을 요구하며, 그 막대한 자금을 제3세계 개발에 돌리도록 촉구한다는 내용이다.

6ㆍ25는 전쟁과 살육을 기억하는 날에서 평화와 희망을 기념하는 날로 바뀌어야 마땅하다. 모든 억울한 죽음들의 진실과 화해는 그 첫 걸음이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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