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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세이 유라시아천년] (30)유목민과 기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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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세이 유라시아천년] (30)유목민과 기마전

입력
2001.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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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중부의 도시 체체를렉에서 하루를 묵은 우리 일행은 빡빡한 일정 때문에아침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양젖으로 만든 차와 야채수프 그리고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마친 뒤 카라코룸을 향해 출발했다.

초원에서 맞은초여름의 아침 햇살은 청량했고 달리는 차안으로 불어오는 바람 역시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10시가 조금 넘었을까,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런 사태로 우리의 발길은묶이고 말았다. 일행을 실은 러시아제 미니밴의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이었다.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눈에 멀리서 뽀얀 흙먼지가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잘 분간할 수 없었지만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기마대가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바로 ‘나담’이라는전통축제에 참가한 기수들이었다.

‘나담’이란씨름 활쏘기 말타기의 세 가지 전통적인 무예의 기량을 겨루기 위해 매년 7월 초순에 열리는 일종의 전국체전과 같은것이다.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힛! 핫! 하는 소리와 함께 말을 몰며 오는 기수들은 놀라웁게도 모두 초등학생 나이의 소년들이었다.

신기한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스쳐가는 얼굴들은 검게 그을려 있었고, 눈은 목표지점에 먼저 도착하려는 의지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역사상 전무후무한대제국을 건설한 몽골기마민의 어린 후예들이었다.

13세기 초 몽골제국을 방문했던 유럽인 카르피니(Carpini)는 다음과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어린 아이가 두 살이나 세 살이 되면 곧 말을 탈 줄 알게 되고, 사람들은 아이의 나이에 걸맞는 조그만 활을 주어 활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말하자면 이제 막 걸음마를 마친 아이에게 말타기와 활쏘기부터 익히게 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기예를 연마하지 않고는 목축이동 사냥 전쟁, 그 어느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것은 유목민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어려서부터 기마술과 궁술을 습관처럼 익힌 이들을 상대로 농경민이 기마전을벌였을 때 그 결과가 어떠할 지는 자명한 일이다.

특히 유목민들에게 사냥은 보조식량을 획득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모의전쟁과 같은것이었다.

수천 수만명이 참가하여 벌이는 ‘몰이사냥’의 기술은 유목민들이 도시를 포위하고 주민들을 몰아서 포획 살상할 때에 그대로 되풀이되었기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총포가 출현하기 이전까지 기마군단은 가장 가공할 전쟁기계였다.한 마리 혹은 여러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 즉 전차를 타고 전투를 벌이는 양상은 이미 고대에 종말을 고했다.

왜냐하면 그 탁월한 기동성에 비해험준한 산지에서의 전투에서는 무력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차부대를 대체한 기마군단이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갖추어져야 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등자(등子)의 발명은 기마전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등자가 처음 사용된 것은 기원전으로까지 소급된다.

고대 스키타이인들도 등자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말에 오를 때만사용했을 뿐 일단 기마시에는 등자에서 발을 빼내어 두 다리를 말 옆구리에 붙여서 말을 통제하고 균형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서 파르티아(Parthia)인들은철제 등자를 만들어 발을 빼지 않고 끼운 채 돌진하여 그만큼 적에게 강한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철제 등자의 발명은 기마술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고,그것은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한 유물은 이 철제 등자가 한반도에까지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기마전의 파괴력은 궁시(弓矢)의 사용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사기에도 고대흉노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무기로 궁시를 들고 있다.

활은 형태상으로 장궁(長弓) 단궁(短弓) 노(弩)로 구분되고, 구조상으로는 단판궁(單板弓)과합판궁(合板弓)으로 나뉘어진다.

몽골인을 비롯한 유목민들이 주로 썼던 활은 단궁/합판궁이었다. 단궁은 활의 길이가 짧아서 파괴력은 장궁에 비해서떨어지지만 사정거리가 멀고, 장거리 이동시 휴대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합판궁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조각 (소재는 大角羊의 뿔이나 木片)을붙여서 만들어진 것으로 신축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합판 단궁으로 무장한 몽골의 기마군단이 적과 마주치게 되면 원거리에서 화살을 비처럼 쏘아부어 적진을 교란시킨 뒤, 본대가 전후 좌우를 공격하여 압도해 버렸던 것이다.

물론 몽골인들이 궁시에만 의존했던 것은 아니다. 근거리에서 육탄전이 벌어질때에는 활 대신 칼과 창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쪽에만 날이 선 휘어진 칼(sabre, 環刀) 뿐 아니라 양쪽에 모두 날이 있는 단검(sword,소위 Akinakes검)도 사용했다.

카르피니의 기록에 의하면 몽골인들은 여러 종류의 창을 사용했는데, 그 중에는 창 끝 옆부분에 갈고리가 달려있어 쓰러진 적을 끌고 갈 수 있게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무기들로 무장한 유목 기마군단의 전투대형 역시 그 기동성이 최대로활용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체로 본대는 좌익ㆍ중군ㆍ우익의 삼익체제로 이루어져 있고, 본대의 앞 뒤에는 전위와 후위가 배치되어 있었다.

전위의앞에는 다시 전초병들이 두어져 적의 동정을 파악하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장거리 원정시에는 가족들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고,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가족ㆍ천막ㆍ가축들은 후위의 뒤쪽 안전한 장소에 은폐시켜 놓았다.

이러한 삼익체제는 제국구조와도 직결되어, 칭기스칸은 자기 동생들을 좌익에, 자식들을우익에 배치시켜 제국의 통치를 위임했던 것이다.

그러나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로 하여금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거대제국을건설케 한 밑거름이 된 기마전술은 화약과 총포의 발명으로 갑작스러운 몰락을 맞게 된다.

대포의 파괴력과 총탄의 신속성 앞에서 기마군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17세기 말 청나라의 강희제가 몽골 유목민과 벌인 일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기마술에 능한 팔기병과 동행했던 포병이 있었기때문이었다.

기마전술의 퇴장과 함께 지난 2천년간 유라시아를 호령하던 유목제국의 종언은 역사적인 필연이었다.

수많은 민족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기마술은 이제 승마라는 이름으로 몽골의 나담축제에서, 혹은 미국의 켄터키 더비에서, 아니면 과천 경마장에서 스포츠ㆍ오락ㆍ도박의 대상이 되고 만것이다.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선조의 옛기상 이젠 '나담축제'로...

푸른 초원을 질주하며 세계를 정복한 몽골제국. 세계를 호령한 그들의 기상을지금도 엿볼 수 있는 행사가 해마다 몽골에서 펼쳐진다. 7월11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나담축제가 그것이다.

1921년 7월11일 만주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해 열리기 시작한 이행사는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대통령이 참가하는 축제가 열리는 것을 비롯, 전국 곳곳에서 마을 단위로 펼쳐진다. 사람들은 공휴일로 지정된 이 기간동안일손을 놓고 축제를 즐긴다.

다른 나라에서도 대규모 관광객이 몰려오기 때문에 나담축제가 열리는 동안은 몽골을 오가는 비행기편도, 숙소도 잡기 어렵다.

나담축제에서는 말타기와 활쏘기, 씨름 등 세 경기가 열린다. 모두 칭기즈칸 시대부터 즐겨오던 경기들이다.

역사에세이팀은 체체를렉에서카라코름으로 돌아오던 중 아르항가이에서 말타기 경기를 보았다. 말타기는 어린이 경기인데 대 여섯살부터 열살 정도의 마을 아이 수십명이 참가했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수 킬로미터는 족히 될 법한 푸른 풀밭을 순식간에 질주한 뒤 언덕을 넘어 목표지점으로 달려갔다.

어른만큼 능수능란하지는 않지만안장도 없는 말 위에 올라 한 손은 고삐를 쥐고, 다른 한 손은 “어서 달려라”며 말을 재촉하는 모습이기마전사의 후예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달리는 녀석들의 모습이 컴퓨터에 빠져 집 밖에나가 노는 것조차 꺼리는 우리 아이들과 대비됐다.

활쏘기가 남녀 모두 참가하는 경기라면 씨름은 건장한 남자들의 경기다. 각마을 단위로도 씨름경기를 하지만 역시 가장 볼만한 경기는 울란바토르에서 열린다.

전국서 모인 장정 500여명이 기량을 겨루는데 선수들은 웃통을벗어젖히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몽골 부츠를 신는다.

경기는 선수들이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나는 시늉을 하는 독수리춤을 추면서 시작된다. 500여명의선수들이 푸른 초원위에서 군무를 추듯 한꺼번에 경기하는 장면은 누가 보더라도 장관중의 장관이다.

물론 경기는 1대1로 진행되며 승자끼리 계속 겨뤄최종 승자를 가린다. 씨름에서 우승하면 그 순간 유명인사가 되고 마을 주민들의 축하를 받으면 금의환향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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