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3대 축인 미국과 유럽(EU), 일본이 형체없는 적과 전쟁을 벌이느라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미국은경기와의 전쟁, 유럽은 인플레와의 전쟁, 그리고 일본은 구조과의 전쟁-.그러나 만족스런 전과(戰果)를 거둔 곳은 없다. 더구나 새로운 복병까지 등장해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느냐, 아니면 다 놓치느냐의 갈림길로 들어서는 양상이다.
특히 전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속에 세 열강이 서로 다른 타깃을 겨냥하다 보니, ‘정책공조‘마저이뤄지지 않아 세계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산하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7일 올들어 여섯번째 금리인하를 단행할 예정이다.
블룸버그 서베이가 채권딜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하폭은 당초 추정보다 큰 0.5%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반년만에 금리를 지난 연말의 절반수준인 3.5%까지 끌어내리는 FRB의 파격행보는 경기침체와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금리인하의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산업생산 증가율이 20년만에 처음으로 8개월 연속 마이너스를기록하고, 설비가동률도 하락을 거듭하는 등 실물경제는 여전히 후퇴국면이다. FRB 안에서조차 “금리인하 효과가 나올 때가 지났는데…”는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FRB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인플레 우려다. 대대적인 단기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향후 인플레 기대심리를 반영하는 장기금리는 되레 상승하고 있다. 장ㆍ단기 금리차도 커졌다.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인플레는 아직 약세지만 물가동향을 면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미네한 보스턴 FRB총재도 “하반기엔 인플레가 새로운 문제로 부각될 것”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미국에선 벌써부터 ‘경기’도 놓치고 ‘물가’까지 잃는 FRB의 ‘참패’시나리오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유럽
유로지역의 인플레율은 5월 8년만에 최고 수준인 3.4%(전년동기대비)를 기록했다. 근원물가지수도 유럽중앙은행(ECB)의 안정목표선(2%)을 웃도는 2.1%로 나왔다. ECB는 21일 정책회의에서 “현 단계에선 경기활성화보다 물가안정이 우선 과제”라며 연 4.5%의 현행 금리를 유지시켰다.
그러자 경기하강 속도가 가속화하고 있다. 유로지역 산업생산은 3~4월 두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BOA는 올해 유럽의 경제성장률을 당초 최저 목표인 2%에도 미달하는 1.8%로 예상했다.
비록 ECB가 물가방어에 우선순위를 두고 금리를 동결시켰지만, 경기하강을 막으려면 언제까지금리인하를 미룰 수 만도 없는 형편이다.
특히 유럽은 미국 일본 영국(EU 미가입) 등 전 세계적 금리인하 조류에서 유일하게 이탈되어 있어, 다른 나라로부터 “세계경기 부양을위한 정책 공조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CB의 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차적으론 인플레가 중요하지만, 저성장-고물가의 현 상황이 ECB의 선택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고이즈미 내각 출범후 일본은 단기적 거시경제 관리는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금리는 이미 제로상태에 도달했고, 대규모 만성 적자인재정은 이미 정책수단 기능을 상실했다.
엔저 정책에 대해서도 하야미 일본은행 총재는 “수출에 다소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주변국 경쟁력을 떨어뜨려 결국 세계경제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며 경기부양을 위한 인위적 엔화절하 정책은 쓰지 않을 계획임을 분명히했다.
일본의 당면한 목표는 구조개혁이다. 3년내 부실채권 완전 해결, 재정수지 흑자전환, 연금제도 개선 등 마치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우리나라의 개혁작업을 연상시킨다. 고이즈미 내각은 확실한 구조개혁을 위해 앞으로 2년간은 1% 미만의 저성장과 10~20만명의 실업자증가는 감수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들 ‘빅 3’가 어떻게 현안을 풀어가느냐에 따라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경제의 회복속도와 진로가 결정될 것”이라며“경제 열강의 정책공조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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