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산산조각 났던 보물 제387호 ‘회암사지선각왕사비’가 3년 여의 대수술 끝에 제 모습을 되찾았다.이 비는 고려말의 고승 나옹(懶翁ㆍ1320~1376) 스님의 부도비로 입적 후인1377년 우왕이 그를 기려 회암사터(경기 양주군 회천읍 회암리)에 건립했다.
나옹이 왕사(王師ㆍ임금의 스승)였고 시호를선각(禪覺)이라고 했기 때문에 선각왕사비란 이름이 붙었다.
고려말의 대표적인 비로 이수(용 모양을 새긴 비의 머리 부분)가 특히 아름답고,훗날 조선 태종때 영의정을 지낸 권중화(權仲和)의 예서체 비문도 단아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대리석비가 중상을입은 것은 1997년 3월 30일. 산불로 보호각이 불 타 무너져내리면서 600여 성상을 버텨온 비는 순식간에 수 백 조각으로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파편들은 심한 화상까지 입어 엉망이었다. “참담했습니다. 저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가능할까…, 착잡하더군요.”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강대일(姜大一) 책임연구원은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복원은 으스러진 손가락을미세접합 하는 수술 이상의 고난도 작업이었다. 높이 315㎝, 너비 106㎝, 두께 22㎝짜리 대형 석조문화재가 그토록 심하게 파손된 적이 없는데다불까지 먹은 상태였고 참고할 만한 외국 사례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작업은 파편 세척에서부터시작됐다. 각종 그을음과 이물질, 녹 등을 부드러운 솔과 치과용 메스로 제거했다. 파편 균열 부위에는 주사기로 에폭시 수지를 채워 넣었다.
덩어리가큰 파편들은 구멍을 뚫고 티타늄 스틸로 심을 박아 연결했다. 특히 이수 일부 등 완전히 떨어져나간 부분은 석고와 실리콘으로 형틀을 떠 새로 만들어넣기도 했다.
3년의 시간이 걸린것은 원래 비의 사진, 탁본, 실측도면과 파편을 하나하나 대조해가면서 정교한 ‘퍼즐 맞추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무리는 에틸 실리케이트 석재경화제를뿌려 비석의 강도를 높인 후 아크릴 안료를 발라 본래 비의 색상에 최대한 가깝도록 하는 색맞춤 작업이었다.
다만 화강암으로 된귀부(龜趺ㆍ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는 파손이 너무 심해 복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강 연구원은 “옛날 같았으면 보물 지정을 해제하고파편들만 보존자료로 보관하고 말았을 것”이라며 “일부 탈락한 글자 부분 등이 있지만 이만큼이라도 복원한 것은 천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이번 복원을 문화재 보존과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작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복원한 비는 20일경기도박물관 수장고로 옮겼고 비가 있던 자리에는 대리석 모형비를 세워 놓았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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