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를 단기간내 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아니다.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서서히 잠식해가는 블랙홀이다.”
오로지 투자수익을 좇아 세계를누비는 펀드성 자금이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조직을 재편하고 확실한 수익모델을 창출한뒤 우리나라에 다시 넘긴다면 산업기반 자체를 장악해 버리는 해외 금융그룹이나 산업자본보다 오히려 낫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단기적 성과에만 치중, 금융안정ㆍ산업발전을 위한 중장기 투자에는 인색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국내 성장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 외국자본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고갈된 외환을 확충하고, 부실자산을 매각ㆍ정리하기 위한 외자유치 정책에 힘입어 외환위기 이후 각양각색의 외자가 국내로 진출했다.
생산기지와 영업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해 들어온 산업자본(금융산업의 경우 금융그룹)은 선진기술(기법) 이전과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문제는 펀드성 자금. 자신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단기 승부를 거는 펀드성 자금은 압축적인 경영개선효과는 있지만, 산업발전을 위한 중장기투자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다.
펀드성 자금은 제조업체보다는투자금 회수가 상대적으로 빠른 국내 금융기관에 집중됐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과 한미은행 대주주인 칼라일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목표수익만 달성하면 가차없이 철수한다.
국민은행 1대주주인 골드만삭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은행이지만 국민은행 출자자금은 다양한 전주(錢主)로 구성된 펀드성 자금이며, 서울은행 매각협상 대상도 펀드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의 경우 현대증권과 경영권 인수협상을 벌이고 있는 AIG컨소시엄을 비롯,KGI그룹(조흥증권 인수) 등이 본국에서 증권업이나 보험업 등을 영위하는 금융그룹일 뿐 대부분 증권사의 외자는 펀드 자금이다.
▼주장1. 실보단 득이 많다=글로벌스탠더드의 신속한 확립
펀드성 자금의 최대 장점은 단기간내 수익성ㆍ투명성 확보 등 글로벌 스탠더드 확립이가능하다는 것.
금융연구원 이동걸 박사는 “펀드 자금의 힘을 빌려서라도 내부 개혁을 해야 앞날을 기약할 수 있다”며 “자금의 성격보다는 경영혁신능력소유여부가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은 올 1ㆍ4분기 불량채권 비율 1% 미만, 당기순이익 925억원 등 비약적인 경영성과를 기록했다.대표적인 투자펀드인 뉴브리지가 1년6개월여만에 가장 위험한 은행을 가장 안전한 은행으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어차피 우리가 경영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면 신속한 정상화후 재인수하기에는 금융그룹보다펀드성 자금이 유리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김창록 소장은 “정상궤도에 오른 금융기관을 우리가 재인수, 국내 금융산업 기반을넓히기에는 단기간에 압축적인 경영혁신을 도모하는 펀드성 자금이 오히려 금융그룹보다 낫다”고 말했다.
▼주장2. 득보다 실이 많다=국내산업의 성장기반 잠식
그러나중장기적으로는 국민경제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도 많다.
우선 단기성과에치중,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중장기 투자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인천대이찬근 교수는 “수년간 우리나라 저축률이 35%대인 반면 투자율은 26% 수준에 불과한 것은 펀드자금이 대주주로 있는 외자계 은행이 쌓인 돈을기업에 공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스탠더드만이 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은 현재 60%인 기업금융 비율을 3년내 50%로 낮출계획이다.
또 관치금융은줄겠지만 국민경제 안정을 위한 금융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시스템안정을 통한 장기적 수익확대보다는 단기에 승부를 걸어야하는 투자펀드로서는 당장의 수익에 도움이 안되는 정부정책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생리.
올1월 제일은행이 현대전자(현재 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한 회사채 신속인수를 거부했고 최근 한미은행은 하이닉스반도체 CB(전환사채)에 대한 분담액 인수를 거부, 차질이 빚기도 했다.
더욱이 1999년 9월 타이거펀드가 SK텔레콤의 유상증자에 반대한후 9.5%의 지분을 SK계열사에 매각,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고 떠난 것처럼 해외펀드 자금은 언제든지 국내 지분을 정리하고 이탈, 국내 경영자원의 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鄭永植) 박사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될 때는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히 철수하는 펀드성 자금의 성격상 금융불안을 부추길 소지가 있고, 클린화가 이뤄지고 단기적 수익성은 높아졌지만, 정작 장기적 수익기반은 잃어버릴 소지가 크다”며 “외자유치정책에서 펀드자금과 산업자본에 대한 차별을 둬야 하며, 국내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인수에 대한 역차별은 없애야 한다”고주장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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