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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열심히 가르치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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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열심히 가르치다 보면…

입력
2001.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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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벽두부터 우리나라는 가히 세기적인 가뭄으로 땅과 마음이모두 쩍쩍 갈라져흉물스러웠다. 그런데 더욱흉물스러운 것은 이런난국에 “때는 바로지금이다” 하며 이미반쯤 쓰러진 자연을무참히 짓밟는 야비한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축구경기에서도 이미 쓰러진 선수를밟으면 곧바로 퇴장이다. 바닥을 허옇게 드러낸 강줄기에 그나마 군데군데 남아있는 고인 물웅덩이에서 촘촘한 그물은 물론배터리까지 동원하여 민물고기의 씨를 말리는 이들에게 레드카드를 들이대고 싶다.

얼마 전 어느일간지에 극심한 가뭄에못 이겨 드디어바닥을 보인 강원횡성군 어느 저수지에서 잡았다며 길이가 1㎙를훨씬 넘어 당신키 만한 뱀장어를 손에 들고 마치적장의 목을 베어들고 선 관운장흉내를 내고 있는중년 남자의 사진이실렸다.

평생 그런고기를 낚아 올린다는 건 분명 대단한일이리라. 하지만 정당한기록으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 빠져꼼짝 하지 못하고펄떡이는 물고기를 주어들고 무얼 그리 자랑스러워 할 것이 있을까싶다.

물이 없어고통받는 물고기들을 보다안전한 장소로 옮겨보호하라고 우리에게 지구의청지기 자리를 맡기신하느님이 내려다보고 가슴을치실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다그렇게 메마른 것은아니다. 충청북도 어느마을에서는 한 주유소의 유조차 안에 딱새가둥지를 틀었다. 다른 곳도아니고 오른쪽 앞바퀴옆 차체 안쪽이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새끼새들은 원래 눈도 뜨지않은 상태에서도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집에돌아오는 걸 귀신같이 안다. 어미새가 둥지옆 나뭇가지에 내려앉을 때 전해오는 흔들림으로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조차가 달릴 때마다 계속흔들릴 텐데 새끼새들이 어떻게 어미가 돌아온것과 차가 움직이는 걸 구별할까 궁금하다.

동물들은 대개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자극에 대해타성이 붙는 경향이있다. 유조차 안의딱새 새끼들도 아마지금쯤은 그저 “또 달리나보다” 하며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잠이 들었나하고 침대에 뉘면영락없이 깨어나 칭얼대다가도 차에 태우고 골목길만 빠져나가도 골아 떨어지는 아기들처럼 차의 흔들림을 오히려 즐기는 지도모르겠다.

유조차가 시동을걸고 움직이기 시작할때 어미새가 둥지를떠나는지 아니면 함께타고 다니는 지도궁금하다.

먹이를 잡으러나갔다 돌아왔을 때차가 없으면 또어떻게 할까. “에이 또어딜 간 거야” 하며기다릴까.

달리는 차 안에 둥지를틀고 그 환경에맞춰 살아가는 딱새가족도 신기하지만 나는스스로 딱새들에게 벌레를잡아 먹이기도 하고종이 상자를 사용하여 둥지를 보다 안전하게 고정시켜주기도 하며 정성을다하는 그 운전기사님의 자연 사랑이 더욱눈물겹다고 생각한다.

그리 오래지않은 옛날 이땅에 사는 많은이들은 먼발치에서라도 새를발견하면 슬그머니 돌부터집어들었다. 그걸 던져맞추면 뭘 어쩌겠다는 건지 분명치 않지만그만큼 각박했던 게우리들 심성이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이유조차 운전기사님은 새들이놀라거나 둥지가 훼손될까 두려워 세차도 하지않는단다.

또 소문을듣고 찾아오는 이웃들에게도 절대 딱새들을 놀라게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사진도 찍지못하게 한단다.

바퀴 옆에붙어 있는 딱새들생각에 운전도 살살한다. 작은 승용차들을 갈아엎을 듯 달리는다른 많은 트럭운전기사들이 거리의 무법자처럼 느껴지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신선한 충격이다. 그 동안끈질기게 자연 사랑을외쳐온 한 사람으로 정말 가슴 뿌듯한일이다.

내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나와내 동료들은 내지도교수 윌슨 박사가정작 우리들을 위해서는 이렇다할 강의 하나개설하지 않고 인문사회 계통의 학생들을 위한교양강좌에만 열심인 것을매우 못 마땅하게 생각했었다.

참다못해 어느 날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의 목에 방울을달기로 했다. 정면으로 그문제를 거론한 것이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대답했다. “자연과학계 학생들에게 자연에 대한 강의를하는 것도 분명히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인문사회계 학생들에게 과학을가르치는 일도 그에못지않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중에서 장차 이나라 과학기술 정책을세우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나올 확률이 훨씬더 크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부터 나도대학에서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강좌를 시작했다.옛 스승님의 말씀을명심하며 열심히 할생각이다.

적어도 내게는내 강의를 듣고훗날 염색공장 사장이된 학생은 비가조금 많이 온다고해서 폐수를 슬쩍흘리는 일일랑 하지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있다.

슬며시 그런제안을 해오는 사원이있다 하더라도 그는공장 옆 냇물속에 사는 민물고기들의 혼인색이며 구애행위며 자식기르기 행동에 대해 얘기하며 눈을 반짝일 것이다. 열심히 가르치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도 저절로 보호되는 날이 오리라.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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