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며칠 사이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먼지만 풀풀 날리던 길이 얌전해졌고물에 씻긴 수풀이 뽀얗게 제 색깔을 찾아갑니다.기상관측 사상 최고라던 이번 가뭄은 눈으로 볼 때에도 그랬습니다. 1년 중 가장 생기가 있어야할 초여름의 산하는 축 늘어진 채 목말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난 두세 달의 취재여행은 ‘물을찾는 여행’이었습니다. 천지가 다 말라버렸다고 아우성인데 과연 물이 남아있는 곳이 있을까.
처음에는 걱정이앞섰습니다. 그러나 물은 있을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있었습니다. 산이 살아 있고 숲이 건재한 골짜기에는 물이 흘렀습니다.
졸졸 명맥만 유지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콸콸 쏟아져 내렸습니다. ‘가뭄이라고?’ 비웃으며 되묻는 것 같았습니다. 산과 숲의 엄청난 힘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가뭄에서 피해를 입었던 지역을 꼼꼼하게살펴보면 사람의 손과 발에 의해 숲과 물길이 상한 곳이 많습니다.
피해가 심각했던 경기 이천과 용인은 골프장과 난개발로 유명하죠. 통째로 뭉개진산과 숲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수 많은 농업용 저수지는 모두 말라버렸습니다.
호된 가뭄이 기회라는 듯,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12개의 댐을 더 짓겠다고발표했습니다. 댐을 만들기 위해 또 산을 뭉개고 나무를 베어내거나 물 속에 장사를 지내겠죠.
제 살 파먹기 아닙니까? 자연이 내려준 건강한 물탱크를부수고 콘크리트 물탱크를 다시 만드는 셈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과연 맑게 흐르는 물을 먹을 수 있을지, 아니면 고여있는 물밖에 모를지. 너무 당연하고,그래서 철딱서니 없는 걱정일까요.
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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