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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복교수의 별과 세상] (1)이화에 월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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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복교수의 별과 세상] (1)이화에 월백하고

입력
2001.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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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리즈 ‘이용복 교수의 별과 세상’을 연재합니다. 서울교대 이용복(과학교육과)교수가 일상생활에서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천문학 개념, 수천 년을 건너뛰는 역사 속 천문관측의 신비를 소개합니다. 이 교수는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을 지냈습니다.고려말 정치가 이조년(李兆年)이 지은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는 배꽃을 소재로 한 시조 중 백미일 것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로 시작하는 이 시조는 작가의 감정을 솔직하고 절묘하게나타낸 시다. 뿐만 아니라 자연 현상을 얼마나 철저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시조의첫째 연을 천문 현상과 관련하여 알아보자.등장하는 소재는 배꽃, 달, 은하수 등이다. 시조가 그리고 있는 시각은 언제인가.

삼경이란 옛날에 밤 시간을다섯 등분하여 세 번째에 해당하는 시간, 대략 밤 11시에서새벽 1시경이므로 자정 전후다. 물론 계절에 따라 밤의 길이가 변하기 때문에 약간씩 달라진다.

그렇다면 배꽃을 하얗게 비치고 있는 달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분위기로 볼 때 보름달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이 달은 명확히 보름달이다.

보름달은 대체로 해가 지기 전후에 떠올라, 해가 떠오르기 전후에 지고 자정쯤에는 중천에 떠 있게 된다.

자정에 중천에 뜨는 달은 보름달일 때 뿐이다. 따라서 이 시조에 나타난 달은 보름달로서 자정 전후 중천에떠 있으면서 하얀 배꽃에 달빛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초ㆍ중ㆍ고 학생들은 과학 시간에 한 달 간 해가 진 직후 매일 같은 시각에 달의 위치와 모양을 관찰하라는 숙제를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해가 진 직후 매일 같은 시각에 보면 초승달은 서쪽에 태양과 함께 지고, 상현달은 남쪽 중천에 오고, 보름달은 동편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반대로 해가 뜨기 직전에 보면 보름달은 서쪽으로 지고, 하현달은 남쪽 중천에 오고, 그믐달은 동쪽에 막 떠오르게 된다. 이렇게 달은 모양에 따라 뜨고 지는 시각이 거의 일정하다.

은하수가 밤하늘에 놓이는 방향과 위치도 계절과 시간에 따라서계속 변한다. 배꽃이 피는 때는 4월말 경부터 5월초.

배꽃이 만발하는 이 기간에는 자정 전후 은하수가 남북으로 길게 하늘을 가로지른다. 음력 칠월 칠석 무렵이면 밤 9시경에 견우와 직녀가 마주보는 가운데에 은하수가 남북으로 흐른다.

즉이 시조에서 묘사하고 있는 정황은 자연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자정 전후에 보름달은 중천에 떠서 배꽃을 하얗게 비추고, 하늘에는 은하수가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사실이 14자 안에 표현되고 있다. 이 얼마나 간단 명확한 사실 묘사인가?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짧은 시조 속에 가식 없이 사실을 있는그대로 표현하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까지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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