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지배력이 무너지는 일본, 실질적 패권을 장악한 한국, 세계 제패를 꿈꾸는 대만. 최첨단 디스플레이인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시장에서 한-일-대만의 ‘삼국지’가 펼쳐진다.경기침체와 반도체값 폭락의 여파로 TFT-LCD 가격도 최근 급락하고 있지만 ‘꿈의 미래시장’을 겨냥한 3개국의 각축은 변화무쌍한 경쟁과 견제, 합종연횡의 양상을 띠며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꿈의 시장
TFT-LCD는 노트북 PC와 모니터, TV, 휴대폰 등에 활용되는 평면형 영상표시장치. 기존 브라운관보다 얇고 가볍고 전력소모가 적을 뿐 아니라 완전컬러로 화면해상도가 높아 ‘꿈의 디스플레이’로 불린다.
지난해 세계시장 규모는 219억달러. 그러나 2005년엔 718억달러로 커져 D램 반도체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규모도 작년 58억달러에서 올해는 반도체의 3분의1 수준인 7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효자종목’이다.
◆각축전
일본의 독무대였던 TFT-LCD시장은 삼성전자와 LG LCD(현 LG필립스LCD)가 양산에 들어간 1990년대중반 이후 2파전으로 바뀌었고, 대만업체들이 본격 가세한 지난해부터는 3각구도로 재편됐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일본의 시장점유율은 99년 61%에서 올해 42.6%로 낮아지고 우리나라는 36~37%를 유지하는 반면, 대만은 99년 불과 2%에서 올해 23%, 내년엔 26%까지 급상승할 전망이다.
업체순위는 한국의 아성이다. ICD저팬 집계결과 지난해 삼성전자는 20.1%의 점유율로 세계 1위, LG필립스LCD(14.7%)가 2위를 차지했다. 톱 10 가운데 한국업체는 2개, 일본업체 7개, 대만업체는 1개다.
상위랭킹은 열세지만 대만은 2005년 세계 1위를 목표로 무려 8개사가 양산체제에 들어가면서 금년에만 389%의 생산증가(한국 53%)가 예상되며, 대만 캔두사가 세계 13위인 하이닉스반도체의 TFT-LCD 부문을 인수, 3파전은 더욱 치열해지게 됐다.
◆대불황과 지각변동
TFT-LCD시장은 현재 반도체 못지않은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 모니터용 15인치 가격은 1년만에 570달러에서 330달러로, 노트북용 14인치는 540달러에서 250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최대 수요처인 PC시장 악화(수요부진) 탓도 있지만, 후발 대만업체들의 대규모 물량공세로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다.
수급불균형과 가격폭락은 기업의 수익구조 악화를 낳고 결국은 합병ㆍ철수ㆍ축소 등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세계랭킹 5위인 일본 NEC가 모니터용 LCD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고, 합작법인(DTI)을 통해 10년 이상 LCD를 생산해왔던 도시바(9위)와 일본IBM(6위)도 제휴청산을 선언했다.
8위인 일본 ADI도 생산라인 매각을 추진중이다. 우리나라 하이닉스반도체의 LCD매각도 같은 맥락이다.
◆숨은 기류
주목할 점은 일본과 대만의 한국견제 구도. 업계 관계자는 “대만은 처음부터 일본과의 기술제휴로 LCD사업을 시작했는데, 여기엔 대만을 통해 한국기업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윤윤중 연구원도 “현재 일본 NEC나 샤프 등은 소형LCD에 전념하면서 수익성 낮은 12~15인치급 중형 LCD(우리나라 주력품목)는 대만에서 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트북 및 모니터 LCD시장에서 일본을 물리친 삼성전자와 LG필립스 LCD는 이처럼 앞뒤에서 죄어오는 양국의협공을 무력화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1조원을 투자해 차세대라인 구축을 완료하는 등 다각도의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
꿈의 시장을 선점하려는 동북아 3개국의 ‘중원 대회전’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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