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6월22일 루마니아출신의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가 파리에서 작고했다. 향년 76세.게오르규의 대표작은 처녀작이기도한 ‘25시’(1949)다. 제2차 세계대전을 시대 배경으로 루마니아의 순박한 농부 요한 모리츠가 유대인으로 오인되고 순수 게르만 혈통으로 추앙되며 나치 수용소와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겪는 기구한 삶을 그렸다.
게오르규는 한국 애호가이기도 해 1974년 이래 한국을 다섯 차례 방문했고 ‘한국찬가’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자신이 약소 민족 출신이었던 터라, 동아시아의 또 다른 약소 민족에게정이 갔는지도 모른다.
동부 유럽은 유럽 연합의 유럽인들이 흔히 ‘또 다른 유럽’이라고 부를 만큼 서부 유럽과는 여러 가지 이질성을 보인다.
대개는 약소국들인 이들 나라의 가장 뛰어난 지식인들은 슬프게도 서유럽에 정착해서야 명성을 얻는다.
게오르규도 1946년이후 파리에 정착해 프랑스인으로 죽었다.
정착한 나라로 귀화를 하든 원래의 국적을 지니고 있든, 이런 망명 지식인들은 그들이 정착한 문화의 중심지를 더욱더 기름지게 하고 그들이 떠나온 문화의 변두리를 더욱 황폐하게 만든다. 부익부 빈익빈이다.
게오르규와 마찬가지로 루마니아출신인 사회학자 뤼시앵 골드만,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 종교학자 미르차 엘리아데, 에세이스트 에밀 시오랑, 체코 출신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 불가리아 출신의 기호학자 쥘리아 크리스테바, 알바니아출신의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 등 당대의 가장 뛰어난 지식인들이 동유럽의 조국을 떠나 프랑스를 자신들의 새로운 둥지로 삼았다.
거기에는 단순히제2차세계 대전 이후의 공산화라는 정치적 격변만이 아니라 수백년 누적된 문화적 낙차가 배경으로 작용했던 것도 같다. 그 슬픔이 낯설지 않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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