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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한권의 책] '구약'과 '오이디푸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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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한권의 책] '구약'과 '오이디푸스 왕'

입력
2001.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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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부문학강의에서 빠트리지 않고다루는 주제 하나는 ‘바보’에관한 것이다. 아무도 바보가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바보가 된다는 것은 이러저리 치이고 몰리고 돌팔매맞다가 소문 없이 사라지기로 할 때 우리가선택할 수 있는최선의 방법 같아보인다.

우리는 히브리구약에 나오는 야베스처럼 “하느님, 제게많은 땅을 주시고부자가 되게 해 주소서”라고기도할망정 “하느님, 저를 바보가되게 하옵소서”라고는 기도하지 않는다.

부자 아빠, 부자 엄마가되지 않고서는 사람이도무지 사람 구실을할 수 없다는믿음이 확고하게 우리를설득하고 있는 지금이 시대에 야베스의 기도는 매혹적이다.

바보이면서 부자가될 방법은 없어보이기 때문에 야베스의 기도는 바보의 기도반대편에 있다. 바보는 지금누구도 원치 않는부정적 모형, 혹은 결핍모형이다.

그런데 참기이하게도 ‘바보 되기’는 동시에인간의 길 아닌가? 내가바보 주제를 자주다루는 것은 이때문이다.

바보를정의(定義)하는 방법은수백 가지겠지만, 나의 경우출발점은 바보가 ‘고통의 존재’라는 것이다. 무슨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신으로부터 많은 양의 고통을분배받는 자, 그가 바보이다.

그는돈 부자가 아니라아픔의 부자이다. 아픔(pain)의 정신적 차원이‘고통’(suffering)이다. 내가 최초로만난 이 의미의바보는 구약에 나오는욥(Job)이다.

욥은 악인이아니다. 인간의 잣대로재자면 욥은 고통받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의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신은그에게서 모든 재산을빼앗고 발가벗겨 고통의소나기 속에 세운다.

신은하루아침에 욥을 ‘바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고통이 부당한 것일때 정의(正義)는어디에 있는가, 정의가 없을때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신이 의로운 자를고통으로 벌한다면 고통의이 불공정 분배를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젊은날 나를 바보로만든 것은 이런질문들이었던 것 같다.

내가 두번째로 만난 바보는 소포클레스 비극‘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오이디푸스이다. 그는 바보가아니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현자’이며 이현명함 덕분에 왕으로추대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신들은그를 한 순간바보로 만들어버린다. 현자는 바보로곤두박질하고 인간의 운명은신들의 노리개 같은것이 된다.

나의 문학수업, 내가 ‘책’과맺은 인연의 개인사는 이런 바보들과의 끊임없는 조우의 과정이다. 밀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셰익스피어,베시비쉬 싱어, 그밖의 많은작가들에서 나는 지금도바보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매혹된다.내게 인간 서사는 바보의 이야기이다.

도정일 경희대 영문과교수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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