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다“정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회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교회는 속수무책이다…이모든 걸 이 시대 문학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겠다. 문학이 에로와 섹스, 그리고 종교와 사회 문제를 떠맡아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독일 작가하인리히 뵐(1917~1985)이 ‘작가의 임무’를 명쾌하게 정리한 적은 없다. ‘참여’로 규정되는 그의 문학적 입장은일차적으로 작품으로부터 찾아진다.
그는 그러나 소설과는 별도로 수필과 강연, 인터뷰를 통해 창작의 태도와 작가로서의목적을 밝혔다. 뵐의 에세이집 ‘언어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다’에서 그의 긴장된 시대의식을 만날 수 있다.
뵐은 “세탁장의 냄새를 벗어났다”며 자신의 작품을 칭찬하는 평론가를만났다. 그때는 “인류의 3분의 2가 배고프고 우유 맛을 보지 못한 브라질 아이들이 죽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때 ‘세탁장을보호하기 위한 말’을 썼다. 세탁장은 더러운 것을 없애는 인류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상징한다.
세탁장에서는 빨래의 즐거움과 위안을 누리고, 삶의생생한 대화를 벌일 수 있다. 뵐은 세탁장에서 불을 지피는 것과 같은 작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문학의 소재를 찾아냈다.
유명한‘폐허문학 고백’에서뵐은 작가의 창작도구로서의 ‘좋은 눈’을 얘기한다. 분홍빛 안경도 있고 파란 색과 까만 색의 안경도 있다.
이 안경들은현실에 칠하는 색깔을 의미한다. 분홍빛은 비싸지만 인기가 좋다. 까만 색깔도 가끔 인기가 있다.
뵐은 무엇보다 좋은 것이 “아주 마르지 않고 푹 젖지도 않은 촉촉한” 눈이라고 말한다. 촉촉하다는 뜻의 라틴어는 ‘유머’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유머가 소설을 살아남게 한다고 썼다. 그는 유머를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인간주의 미학’의 힘으로 바라봤다.
뵐은 시대에참여하는 작가가 되고자 했다. 그는 시대를 경험하고 체험하고 참여하는 창작의 태도를 강조했다.
그 ‘참여’는 게르만의 만행에 헌신하면서 역겨운 승리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나쁜 걸 만들어냈다”는이유로 예술가를 비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뵐이 경멸한 것은 “모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1963년과 64년 겨울학기의 ‘프랑크푸르트대학교 문예창작이론강의’에서 그는 언어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말이 기능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자유가 위협받는 곳에서 언어도 위협받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뵐은 “언어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었다.
★ 하인리히뵐이 남긴 말들
문학에종사하는 사람에겐 국가가 필요치 않다. 그는 단지 세금을 내는 지방행정만을 필요로 한다. 그가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갈 때 가로등불을 약간 밝혀주는일과 그를 쓰레기에서 해방시켜 주는 오물 수거가 필요하다. (‘예술의 자유’)
독서는인간이 깊이 생각하게 하고 자유롭고 저항하는 힘을 얻게 한다. 테러가 지배하는 모든 나라에서는 말이 무장한 저항보다 더 두렵다. (‘언어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다’)
아무리조그만 단어에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가까이 갈 수 없지만 언제나 무엇이 들어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글로 쓴 것은 모두 죽음을 반대하여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심하라! 책들을!)
절망이문학에서 표명되면 그것도 질적 차이점이 있다. 절망은 세로의 y축만으로는 값어치가 없다. 가로의 x축인 책임을 합쳐야 비로소 가치를 얻게 된다.(‘장편소설에 대하여’)
문학은사회의 어디에서 활동하는가. 이따금 의도한 바도 없이 문학은 사회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문학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프랑크푸르트대학교 문예창작이론 강의’)
하인리히 뵐 지음·미래의창 발행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