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 담뱃값은 아주 비싸다. 웬만한 유럽국가에선 담배가격이 3,000~4,000원, 심지어 8,000원을넘는 나라도 있다.담뱃값이 높은 이유는 생산비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정책철학의 결과다. 서구에선 술과 담배처럼 사회에 해악이되는 재화에는 소비억제를 위해 아주 높은 세금을 부과한다.
그래서 주세나 담배세를 ‘죄악세(sin tax)’라고도 부른다. 영국은 담배가격에서 세금비중이 79.4%나 되며, 프랑스76.3%, 이탈리아 74.6% 등 대다수 유럽국가의 담배세율은 70%를 넘는다.
우리나라도 담배관련 세금은 갈수록 무거워지는 추세다. 올 1월부터 담배소비세율은 460원에서 510원으로 인상됐고, 이와 연동해 교육세(담배소비세의 50%:230원→255원)와 부가가치세(공급가액의 10%)도 함께 상향조정됐다.
1,300원짜리 디스 담배엔883원이 세금이며, 전체 담배의 세금비중은 평균 69%까지 높아졌다.
하반기중 담뱃값은 또 오르게 됐다. ‘죄악세’철학에 따라 세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세금과 별도로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현재 2원)을 150원으로 인상하기 때문이다. 구멍난 건강보험재정을메우려면 어쩔 수 없다는게 당정의 설명이다.
하지만 건겅보험 재정을 왜 흡연자가 책임져야하는지는 설명이 없다. 담배연기가 공기를 더럽히니까? 혹은 국민들에게간접흡연 피해를 주니까?
영화관람객에게 문화예술사업 지원재원(극장입장료의 문예진흥기금)을 부담시키는 것은 최소한 명분이라도 있지만, 흡연자와 건강보험은아무리 찾아봐도 연결고리가 없다. 더구나 기금은 정부 스스로 축소ㆍ폐지하겠다고 약속한 준(準)조세다.
건강보험 파탄의 짐을 국민이 떠안는 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굳이 흡연자 호주머니에서 갹출해야겠다면,차라리 세금을 올리는 것이 정도(正道)다.
조세저항은 있겠지만, 적어도 ‘선진국형 죄악세 강화’라는 논리와 명분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세금이든 기금이든 흡연자의 금전적 부담은 마찬가지라고, 세금보다 기금부담을 늘리는 것이 행정적으로 훨씬 손쉽다고 준조세를넓히는 것은 철학보다 편의가 지배하는 우리나라 정책결정 과정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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