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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 무차입경영 확산

입력
2001.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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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자리한 롯데제과의 허름한 공장에는 은행 직원들의 발길이 유난히 잦다. 투신사나 종금사, 보험사 등 2금융권의 기업 담당자들도 단골 고객처럼 드나든다. 빚 독촉을 한다든가 대출을 독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들의 요청사항은 단 한가지. “제발 돈 좀 빌려달라”는 것이다.롯데제과의 자기자본 대비 부채 비율은 6월 현재 75%. 부채로 인해 나가는 지급이자가 한 해 평균 121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남는 회사 자금을 은행권에 빌려주고(예치하고) 얻는 이자수입이 131억원으로, 오히려 지급이자보다 많다.

업종(식음료)의 특성상 현금 순환이 빠른데다 사내 유보금이 풍부한 업체인지라 은행들의 예금 유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두’로 떠오른 무차입경영

은행 빚 ‘제로(0)’에 도전하는 무차입경영 업체들이 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경제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면서 돈을 벌면 외형을 키우는 데 쓰기보다는 금융비용을 줄여 내실부터 다지려는 ‘자린고비’ 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의 말처럼 “차입금이 별로 많지 않은 기업도 영업이익이 생기면 빚부터 갚는 것이 추세”다.

몇 년 전만해도 ‘투자는 외부자금으로한다’는 것이 기본공식이나 다름없었지만 요즘엔 상황이 달라졌다. 부채율 0%를 자랑하는 남양유업은 최근 외부로부터 단 한푼의 자금도 조달하지 않은 채 1,200억원 규모의 초대형 공장을 짓고 있다.

충남 천안시 5만평의 부지 위에1999년 9월 착공, 오는 11월 완공 예정인 이 공장은 하루 원유(原乳) 처리능력이 500톤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제품 가공공장.

회사관계자는 “IMF 위기 때 은행 빚 80억원을 모두 갚은 뒤 이자비용이 나가지 않는 덕분에 이익이 더욱 늘고 있다”며 “사내유보율이 6,600%(유보금 2,60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이젠 웬만한 사업비용은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 매출이 1조2,000억원에이르는 라면업계 1위 업체 농심은 연말까지 부채비율 목표치를 80%로 세우고, 은행 빚줄이기에 심혈을 쏟고 있다.

농심은 올들어 ‘신라면’과‘짜파게티’, ‘새우깡’ 등 대표 브랜드의 판매호조로 영업이익이 크게 늘고 있는데다 차입금 부담(현재 부채비율 92%)도 아주 미미한 수준이지만 이익금의 상당부분을 기존 부채를 해소하는데 쓸 계획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경영분석 대상기업 2,172곳 중 무차입경영을 실현한 곳은 113개로 1999년의 106개 보다 7개 업체가 늘어났다. 이들 업체는 매년 한국은행이 주식시장에 상장 또는 등록된 업체, 매출액 20억원이상인 업종별 대표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에서 나온 것으로 기업 전체로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무차입경영의빛과 그림자

한국은행의 조사결과 앞의 무차입경영 업체들은 지난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제조업체 평균(7.4%)보다 2.7% 포인트 더 높은 10.1%로 나타났다. 다른 업체들이 돈을 벌어 이자 갚느라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1,000원짜리 제품을 팔아 개당 101원의 이익을 낸 셈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무차입경영업체의부채비율은 58.9%로 분석 대상 제조업체 평균(210.6%)의 1/4 수준이며, 차입금을 제외한 비(非)이자부 부채비율(58.9%)도 제조업평균(82.5%)보다 크게 낮았다”며 “무차입경영 기업의 높은 수익성은 많은 기업들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반론도 적지않다. 무차입업체는 문닫을 위험이 없는 튼튼한 회사임에 틀림없지만 미래가치나 성장성 부문에선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신후식(申厚植ㆍ47)수석연구위원은 “신규투자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무차입경영은 자산의 효율성 측면에선 적절치못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며 “투자를 게을리한 채 무조건 외부 차입을 줄여나가는 회사라면 성장전망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벌어들인 수조원대의 돈으로 차입금을 모두 갚고 무차입경영을 선언한다면 이는 미래의 기대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오히려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만큼 ‘안정’과‘성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무차입경영의 향후 과제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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