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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차르의 '復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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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차르의 '復位'

입력
200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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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Tsar)는 옛 러시아 황제의칭호다. 러시아 군주가 이 칭호를 쓴 것은 1480년 칭기즈 칸의 후예가 세운 티무르 제국을 꺾은 뒤라고 한다.천하를 호령한 로마 황제 카이사르(Caesar)의위세를 닮고 싶은 마음에서 전설적 이름을 흉내 낸 것이다.

뒷날 독일 제국 황제는 숫제 철자와 발음까지 흡사한 카이저(Kaiser)란 칭호를 택했다.동양의 군주들이 저마다 중국 황제를 본 받으려 한 것과 비슷하다.

■발칸의 작은 나라 불가리아 국왕이 차르를 칭한 것은러시아를 다시 본 뜬 것이다. 6~7세기 슬라브 족이 세운 불가리아 왕국은 14세기 이래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으니국왕의 호칭만 버젓했던 것이다.

불가리아 차르는 터키에서 독립한 1908년 통치권을 회복했다. 그러나 세계 대전의 격동에 휘말렸다가 46년 공산화한뒤 국민투표를 통한 왕정 폐지의 비운을 맞았다. 마지막 차르는 당시 아홉 살이었던 시메온 2세다.

■여섯 살에 즉위한 시메온 2세는 폐위 때까지 섭정에게 통치를 위임, 국왕 노릇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조부가 빅토리아 영국 여왕의 조카인 시메온2세는 터키로 망명했다가 스페인에 정착했다. 그는 미국 벨리 포지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뒤 줄곧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결혼은 은행가인 스페인귀족의 딸과 했다. 조국과 옛 신민들의 운명과는 다른 인생을 산 것이다. 그는 5년 전 귀국한 뒤에도 옛 왕궁에서 조용히 지냈다.

■그러나 그는 두 달 전 정치 지도자로 변신, 17일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해 55년 만의 ‘복위’를 이뤘다. 국민이 그를 택한 것은왕정에 대한 향수 때문은 아니다.

정치 부패에 물들지 않은 이미지와, 특히 경제적 식견을 앞세운 ‘800일 내 경제 회생’ 약속에 쏠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경제개혁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국민의 조급함이 허울만 그럴 듯한 차르에게 불안한 장래를 내맡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지막 차르의 복위는 동구권 자본주의 실험의 혼돈상을 새삼 확인케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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