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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친구'의 말, 정치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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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친구'의 말, 정치인의 말

입력
200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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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논쟁에 가세할 생각은 없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논란이 제기될 만큼 영화에 전문적 식견을 가진 이들이 세상엔 많이 있다.내가 보기로는 ‘친구’는 다소 무모한 폭력 영화지만, 그런 논의는 나의 몫은 아니다. 기록적인 관객을 불러모으는 ‘친구 현상’의 비밀이 과연 무엇인지, ‘정서’ 포착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갑자기 “우리, 친구 아이가!”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도, 여기선 관심을 접겠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말’이다. 영화 ‘친구’를 두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 영화를 보면서 들어야 했던 ‘말’에 대해서다.

영화에는 적어도 세 차례, 그 우리말이 나온다. 두 차례는 지독한 욕설로서다.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그 우리말을 직설함으로서 영화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민망하고 살벌한 세상살이를 보여주려 했던 모양이다.

감독은 어딘가에다 “나는 관객들로부터 그런 (민망하고 살벌한) 감정과 느낌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했다”고 썼다.

문제는 그런 감정과 느낌으로 끌어내어진 관객이다. 그런 관객의 하나인 나로서는 감독으로부터 ‘말의 폭행’을 당했다는 느낌만을 받고있다.

기분 나쁘고 억울하고 화가 난다. 미학도, 예술도, 그 어떤 심리적 카타르시스도 그 곳에는 없다. 대량전달 매체를 통해서 ‘폭발’하듯 터진, 여성의 성기를 들먹인 그 욕설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향한 성폭력이다.

거칠고 살벌하고 예의 없는 욕설의 문화가 하필 영화 ‘친구’만의 돌출현상은 아닐 것이다. 지난 세기 후반 50년 동안 전쟁과 빈곤, 쿠데타와 깡패문화, 경제제일주의와 지역주의, 졸부문화와 신자유주의 …, 이런 모든 혼돈의 시대를 살아 넘어오면서, 우리 모두는 너나 없이 상스러워졌다. 상스러울 뿐아니라,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지를 아무도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돌아온다.

말이 거칠면 세상이 거칠게 마련이다. 정치권이 매일같이 양산하는 말들이 ‘친구’ 수준에서 더 나을 것이 없는데, 그 정치가 더 점잖고 그 나라가 더 이성적이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애걸복걸한다”니까 “자질과 식견이 의심된다”고 한다. 나라의 최고 정치지도자들을 두고 오가는 험구다. 사람의 입이 얼마나 천박해질 수 있는지를 정당 대변인들은 경쟁하듯 보여준다.

“목포 앞바다에 모가지가 둥둥”하는, ‘엽기’도 그 중 하나다. 정말로 이 나라가 더 이상 결딴나지 않으려면, 정치권에서부터 말을 절제하고 정화하는 일대 ‘각성’이 필요하다.

오랜 왕가뭄 끝에 비가 “오셨다’. 얼마나 좋은지, ‘금비’ ‘단비’로도 표현이 모자랄 정도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비는 늘 ‘오신다’고 했는데, 그 아름다운 우리말을 잃은 지도 오래다.

‘목포앞 바다에…’라는 야당 대변인의 논평이 있던 무렵의 일로 기억된다.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최고위원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쏟아놓았다는 놀랄만큼 진솔한, 그러나 처절하게 들리는 ‘말’이 신문에 소개됐다. 짧은 문장에서 술어(述語)만을 뽑으면 이렇게 연결된다.

“슬프다. 고통스럽다. 억울하다. 외롭다. 도와달라!”

가뭄에서 천심(天心)을 읽었다면, 비로 내려쏟는 은총에서는 더욱 큰 메시지를 새겨들어야 한다. 가뭄 때문에 미뤘던 ‘국정쇄신’의 결단은 바로 지금이 기회다.

대인다운 긴 안목, 명리(名利)에 구애받지 않는 공의(公義)와 정도(正道), 그를 위한 살신(殺身)의 말을 더 듣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구상(具常)시인의 근간(近刊) 시집에서 이런 ‘기도’를 듣는다.

저들은 저들이 하는 바를 / 모르고 있습니다.

이들도 이들이 하는 바를 / 모르고 있습니다.

이 눈먼 싸움에서 / 우리를 건져주소서.

두 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 /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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