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촉촉하게 내리는 단비를 ‘복비’라고 한다. 복비가 살포시 내린 다음날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남긴 신라의 고승 혜초(慧超ㆍ704~787)를 기리는 기념비가 중국 땅에 세워졌다.13일오전 10시30분 중국 시안(西安)의 선유사(仙遊寺)에서 혜초 스님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3m 높이의 기념비 앞면에는 ‘新羅國慧超紀念碑’(신라국혜초기념비)라는비문이, 뒷면에는 혜초 스님의 생애와 업적이 기록됐다.
비정 위쪽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친필 현판 ‘慧超紀念碑停(혜초기념비정)’이 걸렸다. 제막식에는 서울 조계사 주지 지홍(至弘) 스님과 선유사 문물관리소왕톈빈(王殿斌) 소장 등 관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중국 현지에 우리나라 고승의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처음이다.
산시(陝西)성시안시 저우지(周旨)현에 자리한 선유사는 혜초 스님이 당나라 황제의 부탁으로 기우제를 지낸 곳이다.
수나라 문제 때 황제의 피서행궁으로 시작된이 절은 1,400여년의 역사에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이 곳에서 관리로 근무했을 때 ‘장한가(長恨歌)’를쓴 장소로도 유명한 중국의 국보급 사찰이다.
선유사는인근 헤이허(黑河)의 물길을 끌어들이기 위한 댐 공사로 2003년이면 수몰된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헤이허에서 30m 정도 떨어진 언덕에 선유사를이전ㆍ복원키로 하고 현재 터 다지기작업을 하고 있다. 기념비는 바로 이 언덕에 섰다.
선유사인근 옥녀담은 이미 수몰됐다. 혜초가 올라앉아 기도를 드렸다는 거북바위는 사찰 이전을 앞두고 옮겨졌다.
이 바위는 너무 커서 일곱 조각으로 나눠일부는 기념비와 나란히 세워놓고 나머지는 선유사 문물관리소에서 보관하고 있다.
거북바위는2년 전 변인석(卞麟錫) 아주대 인문학부 명예교수가 혜초가 황제에게 올린 표문 ‘하옥녀담기우표’(賀玉女潭祈雨表)에서 기우제를 지낸 기록을 발견하고 중국에서 찾아냈다.
이후 변 교수는 선유사가 댐 공사로 수몰된다는 얘기를 듣고 조계사에 기념비를 세우자고 요청했다. 조계사는 선유사 문물관리소와 공동으로 기념비를제작하기로 하고 2월 착공, 13일 제막식을 갖게 된 것이다.
혜초 스님은774년 당 황제 대종(代宗)의 부탁을 받고 선유사 거북바위에서 기우제를 드렸다. 9일 동안 간절히 기도하자 오랜 가뭄에 목마르던 중국 땅에 마침내복비가 내렸다.
당시 수도 장안에 수많은 고승이 있었지만 황제는 혜초를 선택했다. 그만큼 높은 법력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혜초 스님 기념비가 세워진뒤 나흘 만인 지난 일요일 우리나라에서도 반가운 단비 소식이 들렸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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