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의 18일 담화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6일 북미대화 재개를 선언한 이후 첫 공식반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12일만에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미뤄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결과를 면밀히 분석한뒤, 대화에 대비하는 북한의 신중한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경수로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 요구는 미국이 제기한 핵ㆍ미사일ㆍ재래식무기 감축 의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여서 양국은 대화를 재개하기도 전에 의제를 놓고 한바탕 ‘기 싸움’을 벌이게 됐다.
■담화내용-약속부터 지켜라
북한의 요구는 한마디로 ‘기존 약속부터 이행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담화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쌍방이 이미 공약한 조-미 기본합의문과 조-미 공동코뮤니케의 이행을 위한 실천적 문제들을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네바 기본 합의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면서 경수로 제공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 문제를 ‘선차적인’ 의제로 다룰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또 미국이 제기한 핵ㆍ미사일ㆍ재래식 군비문제를 “일방적이고 전제 조건적이며,의도에 있어서 적대적”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또 “조-미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현안 문제의 발생근원은 바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라면서 미국이 내세우는 의제는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 북측 의도-의제를 선점하라
담화의 전반적 기조는 대화는 하되, 의제를 선점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의 새행정부가 대화를 재개하자고 제의해 온 것은 ‘유의할 만한 일’이라고 밝혀 협상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특히 북한은 관영언론들이 미국을 비난할 때 사용하는 ‘미제’라는 용어대신, ‘미국’이라고 표현했다.
북한은 그러나 미국이 제시한 핵ㆍ미사일 문제의 경우 빌클린턴 전미행정부와의 협상성과를 바탕으로 재협상이 이뤄져야 하며, 이에 앞서 경수로 건설 지연이라는 ‘약속 위반’으로 야기된 전력손실을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미국이 새로운 북미대화에서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를 ‘개선’ 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에 대비, 선수를 친 것으로 보인다.
또 재래식무기 감축 문제와 관련, “최소한 남조선에서 미군이 물러가기 전에는 논의의 대상으로 조차 절대로 될 수 없는 문제”라고 밝혀 주한 미군 철수와 연계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향후 전망-뜨거운 감자‘전력’
북한이 전력손실 보상을 본격 제기함으로써 향후 전력지원 문제가 핵ㆍ미사일ㆍ재래식 무기와 함께 북미 및 남북협상에서 주요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측은 당초 2003년까지 완공 예정이었으나 2008년까지로 늦춰진 경수로 건설지연에 대한 보상문제를 거듭 강조해 오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4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부터 전력지원 문제를 제기해 왔다.
미국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미 외교협회(CFR)는 전력 지원을 경수로 지연 보상이 아니라, 미사일 동결 및 조기 핵사찰을 위한 카드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전력 보상을 고수할 경우 북미협상은 의제 선정과정부터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상지대 서동만(徐東晩) 교수는“담화의 핵심은 클린턴 행정부때부터 쌓아온 협상의 틀을유지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이는 완전히 ‘새 틀’에서 출발하자는 미행정부 입장과 배치되므로 협상 자체가 지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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