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가뭄에쩍쩍 갈라진 논바닥 마냥 이리저리 패였던 농부의 가슴을 적셔준 이틀간의 소나기는 ‘금(金)비’였다.2,000여평남짓한 천수답에 목을 매고 살아온 울산 울주군 두동면의 김모(58)씨는 비소식에 밤새 횃불을 들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고랑 사이를 뛰어다니며 비를맞았다.
김씨는 “앞이 캄캄했어요. 이 비가 오지 않았다면 정말 죽으려고생각했었다”며 “도회지로 공부 보낸 두 아들의 학비 생각에, 애들얼굴이 어른거려 며칠 밤을 지샜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70㎜ 남짓 내린 비에 김씨는 지난 2주일간 마른 하늘을한탄하며 술에 빠졌던 악몽에서 깨어났다. 아랫집 최씨와 박씨를 불러 “함께 모내기하자”고 말하고 나섰지만 또다른 걱정이 떠올랐다.
어쩌면 120mm가넘을 수 있다는 기상청의 호우주의보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경험이 김씨에게 “봄에 비가 적었을 때는 꼭 여름에 물이 넘치고했다”고 상기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인 장마가 들기 전에 한번 더 비가 와야 하고, 장마가 오더라도 둑이 터질 정도의 비는 오지 않아야 할 텐데…”라며 다시 하늘을쳐다보았다.
그래서 서둘러모내기를 준비하는 김씨의 모습을 보면서도 낭만적인 감상을 떠올릴 수 없다. 첨단기술의 시대에 들어선 오늘도 농업은 여전히 하늘에 목숨을 기대고,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지막 직업이 되고 있다.
비가 안와도 논이 마르지 않도록 하고, 또 비가 많이 와도 물이 넘치지 않도록 하는 것은 21세기에도여전히 천심(天心)에 어긋나는 일일까. 아니면 댐과 저수지를 만들고 또 인공강우를 하는 것이 ‘21세기의 천심’에 맞는 일일까.
목상균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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