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평생 잊지못할 일] 자식수발 병치레 잦던 어머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평생 잊지못할 일] 자식수발 병치레 잦던 어머니…

입력
2001.06.19 00:00
0 0

1977년 5월 17일은 어머니가 유명을 달리하신날이다.당시나는 막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시작했는데, 마침 그날은 막내동생이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첫 근무지인 부산 동구청사무관으로 부임한 날이다.우리집은 형제가 5남1녀인 대가족이었다. 교직에 계셨던 아버님의 수입에만의존하여 전 가족이 생활을 하였으니 생활이라기보다는 생존이란 표현이 걸맞을 것 같다.

내가중학교를 다닐 때는중학교부터 입학시험이 있었다. 5남 1녀가 3년 터울로 태어났으니 집안에 입시생이 없는 해가 없었는데 당신께서 새벽기도를 한 번이라도 거르신 적이 없었다.

빈한한 살림 속에 자식의성공을 기도한 어머니의 모정은 요즘처럼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시키는 과외수업보다도 더 자식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선물이었다.

자식뒷바라지로 일생을 보내신어머니는 늘 병마에시달리셨지만 홀로 고통을삭이며 병원 한번 제대로 찾지못하셨고 이같은 안타까움이 결국 나로 하여금 의사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막내가첫 발령을 받아부산에 왔으니 아마당신께서는 세상에 태어나할 일을 다하셨다는 생각이 드셨는지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날 연락을 받고 달려와 본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무척 평화스러워보였다.그때까지 서울서 생활하던막내동생이발령을 받아 부산 동구청으로 출근하게 되었는데 당시 우리 집이 부산 동구 수정동에 있었으니 참으로 우연의 일치였다.

이제사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자식의 성공을 바라며 오직 정신력으로 연명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늘상 삶은 계란으로 실컷배를 불려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 당신의 소박한 소원이셨다.

정작 당신은 진료도 제대로 못 받은 넉넉치 못한 환경에서도 제대로 교육을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자식을 서울까지 유학을 보내셨으니 자식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모정 앞에 고개를 숙일 따름이다.

이제의사가 되었으니 어머니께제대로 된 효도를해 드리게 됐다고생각하던 그때, 너무나 급작스럽게 어머니를떠나 보내던 회한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더욱 당신이 항상 실천하시던 성경 말씀에 따라 생활해 나가고자노력하고 있다.그것은 당신의 묘비에도 새겨 둔 두 구절이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믿음 소망 사랑 이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이는 아름다운말씀이나 훌륭한 말씀이아니라 당신이 실천한 사랑으로써 나에게 전한,살아 있는 말씀이다.

이종철 삼성서울병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