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내가 생각해도 그게 궁금해. 내가 내 실력을 알잖아. 미모도 아니고 돈줄도 없고. 근데 ‘얘를 믿고 맡기면 열심히 한다’ 이거야. 100을 주면 한110은 만들어 냈던 것 같아. 그리고 스캔들도 그래. 과장된 것도 많았지.어쨌든 일부종사한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말도 많았지…. 허 참.한마디로 복도 많은 계집이지. 복 많은 계집.”
그 자신도 궁금하다고 했다.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도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은 늘 ‘인기 가수’였고, 스캔들이 많다고 그리 지탄받지도 않았다. 사람들은“은퇴한다”는 그의 최근 선언에 놀라울 뿐이다.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요즘 왜 활동 안 하느냐’고묻기 바쁘다. 그런데 나는 꾸준히 활동해왔다. 연말과 올해 초에도 뮤지컬을 했다.
사람들은 내가 마이크 잡고 무대에서지 않으면 내가 일을 안 하는 줄 안다. 사람들이 아는 ‘가수 윤복희’로서는 은퇴다. 그러나 뮤지컬 가수, 재즈 보컬 윤복희로는 남고 싶다.”
그는 올해 55세를 맞아 데뷔 50주년 기념 은퇴공연을 갖는다. 3, 4세 무렵부터 아버지의 ‘부길부길쇼’ 무대에 섰고 6세부터 노래를 불렀다.
우리나라 뮤지컬의개척자 윤부길씨의 딸이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소녀가장이라는 힘겨운 짐 뿐이었다.
“유행가는 팝, 즉 팝콘처럼 팍팍 튀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봐라. 내가 언제 10대 가수에 든 적이 있었나. 그리고 ‘여러분’ 같은 노래가 언제 술자리에서 쉽게 불리워졌나.
그런 측면에서 나는 유행가 가수는 아니다. 뮤지컬은 노래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몸짓으로 대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CCM(현대 복음가요)가수는 나의 사명이고, 국악과 재즈를 접목하는 나의 임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가수로서, 그리고 여인으로서 윤복희의 삶은 대중 앞에 낱낱이 공개됐다. TV에나오면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 것을 대중은 목격했고, 주간지에 나오는 그의 스캔들 기사를 보며 그가 어른이 되는 것을 알게 됐다.
무거운짐을 진 소녀의 일탈도, 자유로움도 대중은 ‘성장통’으로 받아들였다. god가 ‘재민이’를키웠다면, 1960년대 혹은 70년대 대중은 ‘복희 키우기’의주인공이었다.
윤복희는 우리 대중에게는 ‘모던’의상징이기도 했다. 76년 긴 부츠를 신고 초미니 스커트를 입은 그의 모습은 충격적 유행의 첨단이었다.
이후로 그는늘 유행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 한국적인 사람이에요.” 어릴 때부터 얼굴에 분 바르는 것이 지겨워서인지 그는 집에 화장대가 없다. 맨 얼굴에 양말도 신지 않는다. 미니 스커트,털부츠, 맨발. 추울 땐 버선을 신는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물만 마셨다. 무엇을 들고 다니기 귀찮아 ‘전대’ 비슷한 가방을 차고 다녔고, 배낭을 메고 다녔다.
생수통을 들고 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드가 유행한 것은 90년대다. 그는30여 년을 앞섰다. 그러나 한 번도 유행을 의식해 본 적은 없다.
아직도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전보다 살이 얼마나 쪘는지 알지 못한다.자기 신체에 대해 둔감하다.
대신 나이를 먹으면서 그는 신과 아버지에 대해 생각한다. 1976년 마지막이된 대구 공연을 위해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김천서 차가 전복됐다.
“이건 사고가 아니다.” 그 때 들린 신의 말씀 이후 그의 연예계 인생도 달라졌다 ‘빠담 빠담 빠담’ 이후 뮤지컬 가수가 됐고, 신앙인이 됐다.
법적으로 어머니의 성(姓)인 ‘성’(성경자ㆍ무용가 고향선으로 활동)씨를 버리고 아버지의 성인 ‘윤’씨를 갖게 된 것이 85년이다. 이해할 수는 있어도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 아버지였다.
추운 겨울 밤, 교회 지하실에서 방석을 덮고 잠을 자고 생계를 책임졌던 과거 때문에 그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책임지지 못하는 일을 하기 싫었다. 그러나 뮤지컬을 하면서그 옛날 뮤지컬을 했던 것이 얼마나 처절한 투쟁이었는지 알게 됐다.
그러면 10년 후의 그는. “생각해 본 적이없다. 옷 만드는 것을 재미있어 하니까 2, 3년 후 특수의상 만드는 것을 해보고 싶기는 한데, 10년이라, 글쎄대답할 수 없는데.
두 번은 못하는 게 이 생활인데. 그냥 하나님 계시는 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고단한 삶과 신앙의 열정이 보이는 이 묘한 대답 속에 그의 연예 인생 50년이 녹아 있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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