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입 국제 질서의 향방을가를 부시 미 대통령의 첫 유럽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미국과 유럽은 예전처럼 이해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기 보다는 각자 이익과 정당성을 국제 여론을 향해 천명했다. 뒷날 타협을 택하더라도, 일단은 명분 다툼에 전념하는 게 유리하다고 본 듯 하다.
부시 대통령의 유럽 5개국 순방을당초 유럽 언론은 ‘위무여행’으로 규정했다. 잇단 강경 외교조치로국제적 반발을 초래한 부시가 최대 우방 유럽을 어떻게 다독거릴 것인가에 주목한 것이다.
여기에는 전임 민주당 정권과 차별화를 서두른 부시 행정부가결국 전통의 우방 유럽의 이해를 돌볼 것이란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우파가 집권한 스페인과 혈맹나토(NATO)본부가 있는 벨기에를 거쳐, 스웨덴 예테보리의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길’을 갈 것을 새삼 천명했다.
여러쟁점 가운데서도 가장 현실적 이해가 큰 교토 기후협약 탈퇴를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대책 연구를 위한국제협력을 강조한 것은 수사에 불과하다.
이에 맞서 EU도 막강한 석유업계에 발목 잡힌 미국의 행보와 관계없이 교토 협약 비준을 강행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은 기후협약과 미사일방어(MD)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중동과 한반도 문제 등에는 원론적 합의를 밝혔다.
비약하자면, 진정한 이해 충돌이 없는 문제에 관한 그 동안의엇갈린 행보는 핵심적 이해를 둘러 싼 명분 다툼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사형제도 시비 등 도덕적ㆍ문화적 논쟁까지 벌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있다.
미국과 유럽의 갈등을 세계 무대의대등한 주역 자리를 다투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따라 양쪽이 서로 ‘우호적 경쟁자’로 대할 것을 촉구하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갈등은 겉으로 내세운 안보와 환경, 정의 등의 가치보다는 경제적 이해에서 비롯되고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기후협약이 다른 이슈를 제친 것은 바로 이 때문이고, 최대의 안보 이슈 미사일방어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볼 때,우리가 중차대한 이해가 걸린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 세력의 위선적 명분에 휘둘리는 것은 어리석다.
게임 역량이 달릴수록, 독자적 명분을 고집하는것이 국익을 지키는 길일 수 있다. 그게 미-유럽 갈등이 시사하는 교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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