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탄요격미사일(ABM) 파문 후 미국정부가 보인 불만과 항의 및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외교부의 업무상 실수가 엄청난 국가적, 외교적 손실로 이어졌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미측 불만 토로
미측은 외교부의 실수를 NMD 지지 입장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했다.
미측은 2월27일 한러 공동성명 발표 후 미 뉴욕타임스가 “한국이 NMD 문제와 관련 러시아 편을 들었다”고 보도한 후 외교 채널을 총동원 해 강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입안ㆍ집행에 막강한 권한을 쥔 토켈 패터슨 미 국가안보회의(NSC) 선임 보좌관은 주미 한국 대사관 유명환(柳明桓) 공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이 미국과 협의도하지 않고 이런 입장(ABM 조약 보존ㆍ강화)을 표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미국 입장을 사보타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파장을 최소화하는(damagecontrol) 방안을 강구하고, 러시아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면 한국 입장을 조속히 발표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측 요구안 제시
패터슨 보좌관은 유 공사에게“한러 공동성명의 표현이 클린턴 행정부 때 사용되긴 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모든 것을 새롭게 검토하고 있다”며 “ABM조약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며, NMD 개발에 장애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이 고의로 미국 입장에 배치되는 발표를 하지 않았더라도 미국 정부가 동맹국조차 설득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게 돼 부시 대통령이 화를 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3월8일(우리시간) 워싱턴에서 있을 한미정상회담이 더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패터슨 보좌관이 제시한 “한국 정부는 군과 영토 방위를 위해 (미사일)방어망을배치할 필요를 인정한다”는 대목 등은 NMD에 대한 지지를 넘어 계획에 동참하라는 지시나 다름없다.
NMD를 반대하는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국가적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에게 ‘방어망 배치 필요성 인정’은 곧 중국,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패터슨 보좌관은 “한국정부가 3월2일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 후 가급적 이른 시기에 이 문안을 발표할 경우 한미 정상회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정부 대응
정부는 3월2일 NSC를 열어 미측안과 외교부안 등을 절충한 끝에 ▦세계안보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접근 필요 ▦부시 대통령 지도력신뢰 ▦동맹국 협의 강조 등을 담은 최종안을 확정했고, 이정빈(李廷彬) 당시 외교부 장관이 이를 발표 했다.
이로써 “미국의 요청이 없는 상태에서정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 오던 우리 정부는 다른 나라보다 앞서 NMD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만 했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미국측 요구 문안
오늘날의 세계는 냉전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억제와 방어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도 변화가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와 운반 수단으로서의 미사일 위협이 점증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으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을 신뢰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는 이런 반응의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미국이 이 점에 대해 합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을 인정하며, 특히 우리 군과 영토 방위를 위해 효과적인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할 필요를 인정한다.
■정부측 발표 내용
오늘날 세계 안보상황은 냉전시대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접근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추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부시 대통령의 지도력을 신뢰하는 바이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국제 평화와 안전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동맹국 및 관련 국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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