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니 넋은 형님곁으로 갔을 겁니다.”지난해 50년만에 돌아온 맏아들을 위해 생일상을 차렸던 이덕만(李德萬ㆍ88) 할머니는 “내년에 다시 올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요”라는 아들 안순환(安舜煥ㆍ66)씨의 약속이 못 미더웠던지 생전에 읊조리던 새가 되어 떠났다.
할머니는 위암으로 인한 고통속에서도 “나 죽으면 평양 아들이 꼭 데려올거야”라며 큰아들에 대한 그리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3월5일 이승의 끝자락에서까지 큰아들 이름을 부르던 할머니는 돌아오면 직접 새기라는 뜻에서 비석에 맏상주 이름자리 하나를 비워두라고 유언했다.
작은 아들 민환(民煥ㆍ65)씨는 “편지라도 보낼 수 있다면 어머니 소식을 전할 수 있을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올해로 1주년인 역사적인‘6ㆍ15 남북공동선언’의 결실로 이루어졌던 상봉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이산 상봉의 감격과 흥분을 뒤로 한 채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거나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대표공동위원장김상하ㆍ金相廈)가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6ㆍ15 남북공동선언 실현을 바라는 이산가족 모임’에는 가족 상봉자 중 이 할머니를 비롯, 1월23일타계한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ㆍ88) 화백 등 벌써 고인이 된 3,4명이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다.
최고령으로 북녘에 있는 아들 신동길(申東吉ㆍ75)씨를 만났던 유두희(柳斗姬ㆍ100ㆍ강원 원주시 문막읍) 할머니는 혹시 아들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모임에는 북한 계관시인오영재씨의 동생 형재(64ㆍ서울시립대 교수)씨, 천문학자 조경철(趙慶哲ㆍ73) 박사 등 이산가족 130여명이 참석했다.
이산 가족들은 오영재 시인의‘다시는 헤어지지 맙시다’라는 시낭송과 국악인 장사익씨의 애절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자 눈시울을 붉혔다.
“보고 싶냐구. 그걸말이라고 해. 아들 보고 싶어 밤 새워 울지. 우리 동길이 오기 전엔 집도 안 옮길거야” 하던 유 할머니는 작은 아들 종순(鍾淳ㆍ64)씨에게“TV라도 나가면 북녘 아들에게 이 에미 건강하다는 소식을 알릴 수 있을까”라고 물은 뒤 깊은 눈 주름 사이에 눈물을 적셨다.
1차 상봉 때 각각북녘의 아내와 아들을 만났던 이선행(李善行ㆍ82) 이송자(李松子ㆍ83) 부부는 이날 모임에도 참석지 못했다.
할머니가 몸져 누워 할아버지가 몸소수발하고 있기 때문. 할아버지가 상봉 때 할머니 아들 박의식(62)씨에게 “난 어머니 머슴이야. 든든한 머슴이 있으니까 걱정하지마”했던 약속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50년 수절 끝에 남편을 만났던 유순이(71) 할머니는 “차라리 안 봤으면 그립지나 않지. 한번 보고 나니 더 괴로워”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14년 전 납북된 아들 강희근(50ㆍ당시 동진27호 갑판장)씨를 만났던 김삼례(金三禮ㆍ74ㆍ인천 강화군 교동면) 할머니는 최악의 가뭄으로 힘들어 하는 이웃 모내기를 도와주며 생이별의 아픔을 달랬다.
북한 여성박사 1호인누나 옥배(玉培ㆍ67)씨를 만났던 김유광(金裕光ㆍ57ㆍ신경정신과 전문의) 박사는 “하루빨리 서신교환이나 면회소 설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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