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 쟁점이 된 ‘기여입학제’를추진하고 있는 연세대. 캠퍼스에는 기여입학제를 반대하는 총학생회의 대자보 몇 개만 붙어 있지만 연세대 공식 인터넷 사이트에는 하루 100여개의 글이 올라오는등 논쟁이 뜨겁다. 이 논쟁은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5월 16일 연세대가 기여입학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가자 인터넷에곧바로 찬반논쟁이 불붙은 것이다. 연세대 4학년 김은아(인문학부)씨는 “과방에서의 토론문화는거의 실종됐지만 사이버 상의 논의는 활발하다”며 “그래서 의사결정을 위한 각종 토론도 인터넷으로 대신하는 과도 많다”고말했다.
온라인의 열기는 오프라인의 상황을 바꿔놓기도 한다. 올 3월 남양유업이 8억원의개런티로 탤런트 최진실씨와 분유 광고모델 계약을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남양유업의 인터넷 게시판은 이를 비난하는 주부들의 글로 도배되다시피했다.
‘차라리 분유값을 인하하라. 안 그러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내용이었다. 주부 네티즌의 거센 반대로 결국 남양유업은 최진실씨와의 광고기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지난해에는 의류회사인 닉스사가 외부에는 도메인 공모 형식을 취하면서 실제로는내정된 작품을 당선작으로 발표한 것이 네티즌들의 조사로 드러나기도 했다. 닉스사는 사과문을 게재하고 공모금액 3억원을 사회로 환원시켜야 했다.
또 비슷한 시기 인터넷 게시판에 올랐던 피부병과 암으로 투병중인 어느 퇴직 노동자의 호소문은 주요 통신망의 메인 게시판에서부터 동호회 게시판까지확산되었는데, 그 후 회사측이 반박문을 발표하자, 네티즌의 항의의 목소리가 거세졌고, 결국 노동부는 역학조사를 다시 실시하게 됐다. 이제 사이버스페이스는더 이상 ‘가상’이 아니라 또 하나의 ‘현실세계’이다.
인터넷 게시판의 위력이 크다 보니 최근에는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검색해주는 대행업체(www.cywatcher.com)까지생겨났다. 인터넷 게시판을 샅샅이 검색해 악성루머나 비판여론에 사전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디지털 문화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그로 인한사회성 결여, 사회 전체의 결속력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내다봤던 것처럼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공론장(publicsphere)’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까지 사회적인 발언권이 제한돼 왔던 소비자, 주부, 학생등도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인 발언권을 갖게 된 것이다.
현실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힘의 원천으로 사이버파워는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있는 ‘안티사이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안티사이트 전문검색엔진 안티투데이(www.anti21c.com)에 도메인이 등록된 안티사이트만 400여개가 된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안티사이트까지 합치면 5,000개가넘는다.
안티 논의는 단순히 ‘반대’에서그치지 않고 권력을 이해하는 방식의 전환, 인터넷을 통한 현실 참여라는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인터넷의 익명성이 야기하는 무차별적인 비방과 욕설 등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민경배씨는 “사이버상에서 형성된여론이 현실에 개입하는 힘은 앞으로 무한히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구성원 수의 제곱에비례하고 그 크기는 구성원의 효용의 총합과 같다는 소위 ‘멧칼프의 법칙(Met Calfe's law)’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는 100명이 모여 100의 힘을 낸다면, 온라인에서는 100명이 모이면 1만의 힘을 낸다는 이야기가된다. 오프라인에서 개개인은 흩어져 있는 점에 불과하지만 온라인에서 개개인은 네트워크로 모두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는“새로운 권력은 이제 총구가 아닌 마우스의 클릭에서 나온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능성 때문인지 행정당국과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인터넷 여론 수렴에 나서고있다. 인천시는 내년도 예산편성에 네티즌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면서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7일까지 사이버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정책투표를표방하는 아이워치코리아닷컴, 보트코리아닷컴 등 인터넷 정치전문 사이트들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새만금개발’ ‘안동수 파동’ ‘북한선박의영해침범’등에 대해 네티즌들의 의견을 묻고 있으나 아직까지 참여 열기는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국회의원3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만큼 인터넷이 정책결정에 미칠 영향력은 더욱 확대돼 갈 것으로 보인다.
김기철기자
kimin@hk.co.kr
■인터넷 실명제 필요한가
“열라 못난 X이, 지가인기가 없으니까 별 짓을 다하는 구먼.” “XX, 지는 완벽해서 남 욕하나. 니미X이다.”
얼마 전 한 잡지에립싱크만 하는 가수들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 가수 이은미씨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실린 글들이다. 물론 이은미씨의 글을 지지하는 글과 이성적으로 비판하는글도 있지만 많은 글들은 감정적인 욕설과 비방으로 채워져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게시판 운영자는 잠정적으로 게시판의 쓰기 기능을 중지해버렸다.
현재 익명으로 운영되는 각종 인터넷 게시판은 가히 말들의 시궁창이라고 할 만큼온갖 비방과 욕설로 오염돼 있다. 이뿐이 아니다. 인터넷 게시판의 위력을 보여준 성수여중 사건 에서 가해학생의 이름으로 허위 글을 게시판에 올렸던 대학생이 구속된 일은 익명성으로 인한 여론조작의 가능성까지 보여준 셈이다. 그래서 ‘인터넷 실명제’도거론되고 있다.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인 다모임의 정성희 홍보팀장은 “익명을가장한 인신비방 명예훼손에 이제는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며 인터넷 실명제를 주장했다. 다모임의 경우 실명제를실시하면서 비방과 욕설이 현저히 줄었다.
청소년문화연구소 김옥순 실장도 “인터넷을 언어폭력이난무한 상태로 방치하면 긍정성마저 잃게 된다”며 실명제 도입을 지지한다.
하지만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상지대 교양학부 홍성태 교수는 “실명제로하면 자유로운 의사표현이라는 인터넷의 기본적인 정신까지 다치게 할 수가 있다”고 반대했다. 그리고실명제로 인한 감시의 가능성, 개인정보 유출 역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최 영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안티사이트등은 시민 저널리즘의 하나로 봐야 한다”며 “명예훼손 거리는 당사자들이 해결할 문제이지 형사고발 대상은 아니다”고반대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박찬구 정보통신윤리학회 이사(한국외대 철학과 교수)는 “해법을서양의 가면무도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익명 게시판을 운영하되 회원의 자격을제한하면 최대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하되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거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 전체적인 토론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네띠앙의 홍윤선 사장은 “10대 네티즌들은 토론문화에 익숙치 않아 비난과 비방을비판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며 기본적인 네티켓 교육과 함께 토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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