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대 암각화는1971년 문명대 동국대 사학과 교수가 발견해 1995년 6월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세계적인 암각화다.3,000여 년 전인 신석기~청동기시대 때 절벽에 새긴 290여 종의 고래와 사슴, 멧돼지, 그물질하는 사람 그림이 남아있다.
그러나 댐 건설 후 수몰에 따른 풍화, 몰지각한 행락객들에 의해 표면이 떨어져 나가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에는관광단지 개발사업이 가시화하면서 울산시와 시민단체가 갈등까지 빚고 있다.
/편집자 주
울산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산 234의1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 각종 고래와 상어, 물개는 물론 고래를 잡은 뒤 기념사진이라도 찍듯 고래 옆에서 포즈를 취한 사람의 모습까지선명하다.
유럽의 지중해_알프스 일대 몽베고 유적과 함께 세계적인가치를 평가 받고 있는 암각화라는 사실이 과장되게 들리지 않는다.
12일 현장에서 직접 본 반구대암각화는 안쓰러울 정도로 방치ㆍ훼손돼 있었다. 극심한 가뭄으로, 만수 때면 높이 10여㎙의 암각화 밑동까지 차오르는 대곡천 물줄기의 수량이 줄어들면서 암각화 위에 하얀 물때를 층층이입혀놓았다.
이로 인해 암각화 그림은 망원경으로 봐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해져 있었다. 동행한 전호태 울산대박물관장은 “3월에 찾았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1965년 대곡천 하류를 막은 사연댐으로 인해 8개월 여 동안의 수몰과 4개월 여 동안의 노출이 반복되고, 이에 따라 사암, 실트스톤 등 내구성이적은 퇴적암계 암석 표면이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물과 암석간의 화학반응으로 인한 표백효과(물때)도 암각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호태 관장은 “물이암석의 칼슘 성분 등과 반응해 발생시킨 용해물이 암석 표면을 하얗게 뒤덮고 있다”며 “바위 위에서 그대로말라죽은 이끼가 덩어리째 떨어져 나가면서 주위 암석 표면도 함께 부스러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위적인 훼손 역시 암각화의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낚시꾼과 행락객들에 의한 수질 오염, 심지어 암각화의 탁본과 주형 제작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지난 겨울 대곡천이얼어붙자 한 행락객은 암각화에 고래 그림과 자신의 이름을 새겨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1㎞ 정도 떨어진 또 다른 암각화 천전리 각석(刻石ㆍ국보 147호) 주위에는 검게 그을린 바위 등 취사 흔적이 지금도 역력했다.
문화재 주변 500㎙ 내에서는 각종 증ㆍ개축이 금지돼 있는데도 각석에서 불과 50여 ㎙ 떨어진 사유지에서는 최근까지 공사를 한 듯 모래와 자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런 와중에 울산시가2003년 말까지 이곳을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단지로 만들기로 해 학계ㆍ시민단체와 갈등을 빚고 있다.
4월 발표한 ‘반구대암각화 주변 선사유적 조성안’에 따르면 울산시는 예산 155억원을 들여 내년 6월월드컵축구대회 개막 전까지 언양_경주 35번 국도에서 반구교까지 2.3㎞ 구간을 현재 1차선 도로(폭 3.5㎙)에서 폭 8㎙의 2차선 도로로 확장한다.
또 암각화에서 1㎞ 떨어진 반구교 못 미친 지점에 1,000여 평 규모의 대형 주차장을만들고,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사이 계곡에는 연장 2㎞의 산책로를 조성한다.
2003년 말까지 반구교 안쪽 밭에 400평 규모의 현대식전시관도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암각화 400~500㎙ 앞에 전망대를 설치하는 안도 포함됐다.
1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반구대 암각화를 사랑하는 시민연대’의 이상권 사무국장(울산역사교사모임회장)은 “2차선 도로 확장은 아무리 조심해서 공사를 한다고 해도 인근 산을 깎을 수밖에 없다”며 “현재의 도로를 그대로 놔두거나 자전거도로 등자연 친화적 도로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재호 동국대 고고미술학과교수는 “반구대와 세계 곳곳의 암각화를 비교해서 볼 수 있는 전시장 건립에는 찬성한다”며 “그러나천전리 각석_반구대 암각화의 선사 유적벨트 안에 현대식 전시관을 건립해서는 곤란하다”고밝혔다.
전호태 관장은 “향후 대형버스 통행으로 인한 대기 오염과 대규모 수학여행단으로 인한 인위적 훼손 역시큰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울산시는 암각화 공원화 사업이 ‘자연친화적 개발’임을 강조하고 있다. 허언욱 울산광역시 문화체육국장은 “근접해서 봐도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암각화와, 차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진입로를 그대로 놔두면 누가 이곳을 찾아오겠느냐”며 “접근성이있는 관광명소로 만들어야 명승지 지정 등을 통해 본격적인 암각화 보존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허 국장은 또 “2차선 도로 확장은 도로 왼쪽 산이 아니라 오른쪽 논을흙으로 덮어 산림훼손을 최소화할 예정”이라며 “전시관 역시 이미 개발돼 있는 밭에다 짓는 것이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논란 속에 정작 시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암각화 훼손 문제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는 암각화 보존을 위해 올해 2억원의 예산을 책정했지만 아직 전문가에게 연구용역조차 의뢰하지 않은 상태다.
암각화 주변에는 울주군 문화연구원에서일용직으로 고용한 문화재 감시원 1명이 있지만 300~400여 명의 주말 행락객을 통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학계 역시 “암각화앞에 방수벽을 설치하자”는 등 현실성이 없는 안만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땅 선인들의 생활상을 3,000년 넘게 변함없이 간직했던 반구대 암각화는 볼품없고 흉물스런 바위 절벽으로 전락할 위험에처해 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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