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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장관의 기고, 경찰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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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장관의 기고, 경찰의 기고

입력
2001.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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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에는 매일 독자투고가 얼마나 들어올까? 지난해 가을 여론독자면 데스크들의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했던 이재경(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10통에서 많게는 70통씩 독자투고가 쌓인다고 한다.너무 많다고생각됐던지 세미나에서 만난 이교수는 “신문에 실릴 것을 고르려면 시간 좀 걸리겠어요”하고 물었다.

하지만 대부분 데스크들이 “웬 걸요, 맨날 보내오는 데를 빼면 별로 없어요”라고대답했다. 맨날 보내오는 데라는 곳은 경찰,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통신들로 이들 기관의 직원들은 하루에도몇 통씩 독자투고를 보내온다.

하기사 전국의 경찰이 15만명이니 이들 중 1%만 보내도 1,500건이다. 또한 이들도 신문의 독자인 것은 분명하니독자투고를 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이들이 보내오는 글이 뻔한 내용이어서 투고를 위한 투고라는 데 있다.요즘 경찰이 보내는 것은 ‘기초질서를 지킵시다’이고 수자원공사 직원은 ‘물을아낍시다’이고 도로공사 직원은 ‘고속도로를 바르게 이용하자’가 대부분이다.

한국통신 직원의 투고는 ‘전화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에 집중돼 있다. 또 도로공사 직원과 관련된 미담만을 집중적으로 보내오는 단골투고자도 있다.

이들 단골투고자 가운데 가장 극성스런 이들은경찰로, 일부는 “꼭 좀 내달라”는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고 신문사내 지인을 통해 게재를부탁하는 이들도 있다. 일단 신문에 글이 실리면 포상하는 경찰서도 있다고 한다.

신문사의 여론독자면은 남녀노소, 직업의 귀천을 떠나 누구든 글을 쓸 수 있다.또 좋은 글이면 직업과 상관없이 실려야 한다.

수도검침기도 전기검침기처럼 세대별로 달아주자는 글을 쓴 경찰은, 한국일보가 다달이 독자투고 가운데우수작 한 편을 선정해서 시상하는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0년 4월의 기자’로뽑히기도 했고 트럭은 포장적재함을 만들자는 도로공사 직원의 글도 고속도로에 적재물이 나뒹굴고 있는 고발사진과 함께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름을 내기 위해 쓴 글은 실을 수가 없다. 이들의 본령은 기관에 맡겨진 일을 잘하는데 있지 신문을 통해 대국민홍보를 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는 경찰보다는 범죄예방과 대민봉사에 충실한 경찰이 더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 같은 기준은지킬 수밖에 없다.

공단 이사장이나 공사 사장 가운데도 신문 기고에 신경을 쓰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업무의 전문성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기관장을 맡게 된 이들이 그렇다.

최근에는 장관들도 신문기고에 부쩍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장관이라면 한 나라의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로, 정책을 통해 얼마든지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장관이 신문기고에 신경을 쓰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장관이란 자리가업무를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할 수 없거나, 업무보다는 신문에 글이 실리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를 통틀어19명뿐인 장관의 글이 우리 신문에 실리는 것도 의미있겠지만 자칫하다간 한 나라의 장관직이 업무 능력보다는 다른 것으로 평가받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결국 장관의 글도 정책입안자로서 통찰력이 있는가, 그 장관만이 쓸 수 있는 글인가를 엄정하게 따져서 싣기로 했다.

서화숙 여론독자부 차장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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