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장준하 선생 사건장준하(張俊河) 선생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태두(泰斗)다.
최초의 ‘재야인사’로 인식되는 그는 대쪽 같은 성품으로 역대 독재정권의 탄압을 한 몸에 받았다.1975년 사망 직후부터 숱한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단순 실족사’란 당시 수사당국의 발표에 이어 긴급조치 적용 등 역대 정권의 서슬퍼런통제로 4반세기 넘게 그의 죽음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1918년 평북 삭주 태생인 그는44년 일제의 학도병에 동원됐다 탈출, 중국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해방 후 김 구(金 九) 선생 비서 등을 지내다 53년 월간 ‘사상계’를창간, 이승만 정권 하에서 국내 대표적인 지성인 잡지로 키워냈다.
‘사상계’는 58년 함석헌(咸錫憲) 선생의 ‘생각하는백성이라야 산다’를 게재해 필화를 입은 것을 필두로 70년 김지하(金芝河)의 시 ‘오적’ 게재를 이유로 등록 취소 처분을 받을 때까지 권위주의정권에겐 ‘눈엣가시’였다.
대학생과 지식인들에게는 ‘지성과 민주화의분신’과 같은 잡지였다.
장준하 선생은 61년 5.16 쿠데타후, ‘박정희 대통령불가론’을 주장하다 66년 국가원수 모독죄로 구속되는 등 무려 9차례 구속과 석방을 반복했다.
그는 75년 측근 인사4명과 함께 경기 포천군의 약사봉 등반에 나섰다가 숨진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동행인 등의 증언에 따르면 일행이 계곡에서 점심을 준비할 때 그혼자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 며 산에 오르기 시작했고, 뒤늦게 도착해 뒤쫓아갔던 당시 목격자 김모(67)씨가 “선생님이 발을 헛디뎌 다치셨다”며 일행에게 비보를 전했다는 것이다.
93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장준하선생 사인규명 진상조사위원회’를구성, 타살을 주장하며 국정조사까지 추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타살로 추정하는 근거는 ▦사고지점에 일반적인 방법으론 접근조차 불가능한 점 ▦추락사에도 불구, 외상이 전혀 없는 점 ▦당시 수사당국이 현장검증을 생략한 점 ▦최초 검시의의 양심선언 ▦사고당시 주변에 있던 의문의 군인 2명 등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4월 약사봉 일대 항공촬영과 지난달 31일 목격자 김씨 소환 등 치밀한조사를 벌여왔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73년 최종길 교수 사건
‘타살’을‘자살’로 둔갑시킨 그들은 누구일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12일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의문사 1호’ 최종길(崔鍾吉ㆍ당시 42세ㆍ사진) 교수는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보고함에 따라 사건 축소ㆍ왜곡 과정과 명령 계통에 대한 조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73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재직하던 최씨는 10월16일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 참고인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감찰실 직원이던 동생 종선(鍾善ㆍ54ㆍ미국 거주)씨와함께 중정에 자진 출두했다 사흘만인 10월19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중정은 최씨가 조사를 받던 도중 중정 남산 본관 7층 화장실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으며, ‘양심의 가책에 따른 자살’이라고 밝혔다.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88년에는민주화 물결을 타고 검찰 재조사가 이뤄졌지만 진상은 다시 어둠 속에 묻혔고, 이후 최씨 사건은 대표적인 의문사의 하나로 유족과 민주화세력의 끊임없는 진상규명 요구가 이어졌다.
위원회에 따르면 ▲88년 공개된부검 사진에는 다리와 엉덩이 부분에 (고문으로) 찢겨진 상처가 있고 ▲중정이 동생 종선씨에게 ‘부검에 참여해 자살로 합의해 주면 거액을 주겠다’고 회유한 사실 ▲투신자살이라는 발표와는 달리 추락장소에 혈흔이 전혀 없었다는 88년 중정고위간부의 진술 ▲함께 조사를 받은 김장현(당시 경제과학심의회의 분석관)씨가 최씨가 (고문의 후유증인 듯) 다리를 절룩이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점 등을 들어 자살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밖에 ‘즉사’했다는중정의 발표와는 달리 살아있는 상태에서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후송됐다는 진술 등도 타살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증거로 보고 있다.
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관련 사실을 모두 밝힐 수는 없지만 타살을 입증할 수 있는 일부 증언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전체적인 사건 축소 ㆍ왜곡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적극적인 조사협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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