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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어느 할머니의 3代걸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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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어느 할머니의 3代걸친 그리움

입력
200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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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나는 그리움으로 돌아가신 한 할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는 작년6월 71세로 한많은 세상을 뜨셨다. 집 앞 텃밭에 붉고 흰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었다.할머니의 남편은 6ㆍ25때 전선으로 나간 후 휴전이 되던 해인 53년 6월 김화전투에서전사했다. 남들은 돌아올 가족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들떠 있을 때 할머니는 네살박이 아들을 안고 청천벽력을 맞아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남편을 쏙 빼닮은 아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는 기쁨으로 새파란 청춘을보냈는데 그 아들마저 경찰관이 되어 삼척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나가 또 전사했던 것이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할머니는 미친 듯 소리쳤지만 의사가 광목천을들치며 확인시켜 주었을 때 그만 나무토막처럼 툭 쓰러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들을 일찍 장가보내 두살짜리 손자를 하나 두고 있었다.할머니는 손자를 어루만지며 영락없는 제 할애비와 애비구나 하며 남편보듯 아들보듯 희망을 안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자가 9살 땐가 며느리가 재가를 하면서 다시 할머니 혼자달랑 남게 되었다. 그래도 처음 몇 년간은 1년에 두서너번 손자가 다녀가곤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반찬가게를 해서 모은 돈으로 손자 좋아하는선물도 사주고 용돈도 주곤 했다. 그러다가 차츰 손자의 발걸음은 뜸해지고 1년에 한번 6월 할아버지 제사 때나 오곤 했다.

그렇게 10년을 넘고 부터는 손자는 오지 않았다. 무슨 대학인가를 다닌다는 소식만들을 수 있었다. 가게에서도 집에서도 길을 가다가도 할머니는 손자만 생각했다.

반찬가게가 있던 시장이 대형백화점이 들어서면서 헐리자 할머니는 소일거리 마저없어져 더욱 손자만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무렵 나는 가끔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할머니는 늘 봉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멀리 신작로가 내려다보이고 거기 버스정류소가 있었는데 그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할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는 체 돌아보는 할머니의 얼굴에눈물자국이 가득했다. 할머니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자 할머니께서는 “이제 가야겠어.

저승가서손자놈 얘기를 어떻게 전하지? 자네도 이제 그만 와도 될꺼야. 고마웠어. 나같은 거 마음 써줘서”라고 하셨다.

그 다음해 6월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못잊을 그리움이 있어 앙칼한 손에는 해말갛게웃는 손자의 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박용진·건강사회실천운동협의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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