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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승부 초월한 예의 '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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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승부 초월한 예의 '복기'

입력
2001.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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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는 승부를 다투는 다른 게임이나 스포츠와는 달리 복기라는 독특한 절차가 있다. 한 판의 대국을 마친 후 두 대국자가 지금까지 싸워온 과정을돌이켜 보면서 서로가 두었던 수 들의 잘잘못을 검토해 보는 것이다.복기를 하는 관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복기를 하는 가장 큰이점은 기력 증진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복기를 해 보면 서로의 잘못된 착수가 밝혀지고 최선의 착점을 찾아 낼 수 있게 된다. 또 대국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묘수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둑이 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바둑을 기록하고 복기하는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같은 실질적인 이유 외에도 복기를 하는 모습은 승부를 초월한 동양의 범속한 경지를 느끼게 한다.

옛부터 ‘바둑은 도’라고 전해져 왔듯이 승자와패자가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잠시 절제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지난 바둑을 돌이켜 보는 모습은 마치 구도자의 자세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복기는오직 바둑에만 있는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전해져 왔다.

이런 점에서 대국이 끝났을 때 복기를 하지 않고 그냥 일어서는 기사는 예의를 모르는 것으로 취급된다.

실제로 이창호와의 대국에서 번번히 패배한중국의 마샤오춘(馬曉春) 9단이 복기를 하지 않고 일어선다고 해서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에 반해 패배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복기하는조치훈이나 린하이펑(林海峰) 같은 기사는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복기라는 절차는 대단히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현대 프로 바둑은 최선의 수를 찾아내기 위한 구도 행위가아니다.

옛말에 바둑이란 ‘이겨서 기쁘고 져도 역시 즐거운 것’이라고 했지만 바둑 동호인들간의 친선 대국이라면 모를까 엄청난 돈과 명예가 걸린현대 프로 바둑 경기에서 조금 전까지 치열하게 치고 받던 승자와 패자가 대국이 끝나자마자 ‘허심탄회’한 듯 복기를 하는 것이 과연 자연스런 일일까.

오히려 승자는 한껏 환호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패자는 쓸쓸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더욱 인간적이지 않을까.

점심 내기 한 판만 져도 속상해서견딜 수 없는 게 바둑꾼의 인지상정인데 바둑 한 판에 수 천만 원 혹은 수 억 원이 걸린 큰 승부를 끝내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복기를 하고 있는 프로 기사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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