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이었지만 고향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어느 새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지난 1998년 북한을 탈출, 서울에서 탈북자동지회 여성부회장을 맡고 있는 장인숙(60)씨는 지난 9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미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 김순희(37)씨를 만나 고향사람임을 확인했다.
장씨는 샌디에이고 시내의 한인식당에서 2시간 동안 저녁을 함께 하며 김씨와 청진, 무산, 부령, 고무산 등 고향 얘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장씨는 김씨가 ‘진짜 탈북자’임을 가려내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다. 장씨는 ‘무산에서 청진까지 가는 길이 어떠하냐’는 등 10가지 문제를 준비, 김씨에게 물었다.
이에 김씨는 무산-청진 사이의 역 이름을 줄줄 꿰고 청진 시내의 대학에 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또 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어야 하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도 기억하고 있었으며 “장백산 줄기줄기…”로 시작하는 김일성 장군 노래와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으로 시작하는 북한 국가를 부를 줄 알았다.
이밖에 김씨는 탈북전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도 상세히 대답, 장씨의 ‘시험’에 무난히 합격했다.
함북 무산 출신인 김씨와 부령 출신인 장씨는 이에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서로를 “엄마”, “내 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장씨는 “함북에서는 어머니 나이 또래의 가까운 사람을 ‘엄마’라고 부른다”며 “김씨가 내 큰아들과 동갑이어서 나도 딸을 하나 얻은셈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좀처럼 그칠 줄 모르는 대화 도중 장씨는 지난해 북한에서 처형당한 둘째 아들 생각에,김씨는 중국에 남겨두고 온 아들(10)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이어 장씨는 한국 내의 탈북자 근황을 설명한 뒤 “망명신청이 잘 받아들여지도록 기도하겠으니 앞으로 또 올지 모르는 다른 탈북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라”고 김씨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한편 장씨는 북한에 있을 때 인민대표공사 총책이었던 남편(정순성ㆍ78년작고) 덕분에 혁명가의 유가족으로 예우받고 살았으며 여성으로는 드물게 토목기사로 일하면서 주체사상탑 공사 등에 참여, 김정일 표창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장씨는 큰아들 정현(37)씨가 90년 8월 러시아유학 중 한국으로 귀순하는 바람에 반역자로 몰려 함북 온성군 탄광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처해졌다. 98년 8월 두만강을 넘어 큰아들이 사는 한국의 품에 안겼다.
김씨는 지난 94년 북한을 탈출, 6년간 중국 옌볜(延邊)에서숨어살다 지난해 11월 홍콩, 필리핀, 멕시코 국경을 거쳐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다 연방이민국에 체포됐었으나 정치적 망명을 신청, 지난달 8일 가석방돼현재 이민법원의 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다.
장인숙(왼쪽)씨와 김순희씨가 9일 고향 이야기를 나눈뒤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LA미주본사=최갑식, 하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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