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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특집] (4)'될거리'만 좇아다니는 인기지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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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특집] (4)'될거리'만 좇아다니는 인기지상주의

입력
2001.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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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여론의 비판받을 때면 으레 논의되던 특별검사제 추진 연대, 정부의 전자주민카드 도입 방침에 반발한 공동대책위 발족…. 하지만 지금 이 것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특정 사안이 사회적 이슈로 뜨면 요란하게 움직이다가도 언론이나 여론의 관심이 식으면 슬그머니 함께 활동이 중단돼 버리는 ‘죽은 연대’가 한 둘이 아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의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될 만한 것이 운동의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ism), 곧 그때 그때의 대중의 관심에 영합하는 인기 지상주의다. ‘될 거리’만을 쫓아다니는 지나친 대중추수적 운동방식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본래영역을 넘어 온갖 사안에 얼굴을 들이미는 백화점식 운동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상당수 시민단체들이 전문성 부족으로 운동의 신뢰성 자체를 비판받는 이유 중의 하나다.

▦ 인기위주 한건주의의 함정

“의약분업은 ‘비전문가 집단’인 시민단체들이 국민들을 선동한 결과인만큼 시민단체가 책임을 져라.” “집권자와 짜고 의약분업을 실시해서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는 이제 와서 무책임하게 방관하는 시민단체들은 자폭하라.”

파산위기에 빠진 의보재정을 살리기 위해 결국 국민들이 추가부담을 져야하는 상황이 분명해지면서 주요 시민단체 인터넷 사이트마다 쇄도하는 분노의 글 들이다. 요컨대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한 시민단체들의 무책임한 ‘선동’에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시민단체들이야 대단히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 김기식(金起植) 정책실장은 “의보재정 파탄원인은 정부가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의료수가를 지나치게 올려준데 있다”며 “그런데도 의약분업 자체나 의약분업을 주장한 시민단체에 재정파탄의 직접 책임이 있다는 비판은 수긍하기 힘들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새삼스럽게 시작한 ‘보험료인상 저지와 수가인하를 위한 시민행동’운동에 대한 일반의 반응은 과거의 열기에 비춰보자면 자못 시큰둥해 보인다. 실제로 주요 시민단체의 한 간부는 “의약분업 강행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시민운동의 ‘무오류 신화’에 집착, 방향을 수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사실 시민단체들의 ‘이슈 쫓아다니기’, 또는 ‘한건주의’에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참여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척박한 활동여건에서 시민들의 관심의 크기는 곧 운동의 힘이자 시민단체의 유일한 존립기반.

그러나 문제는 인기에 매몰돼 합리적인 비판정신이 마비되고 검증절차가 생략된채 즉흥적 운동이 이뤄지거나, 실효성이 의심받는 전시성 운동에 치우치고 있다는 점이다.

▦ 될만한 건 뭐든지 손 댄다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드물다는 우리 시민단체들의 백화점식 운영 및 운동도 이런 체질에서 연유한다. 여론의 조명을 받을만하다 싶으면 ‘전공분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 경제, 환경, 인권 등 모든 분야에 뛰어들어 동시다발적으로 운동을 벌이는 식. 그들이 비판하는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확장이나 선단식 경영방식과 그 양태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경실련의 경우 1989년 설립 초기에는 부동산 문제 등 그야말로 경제정의 실현에 역량을 집중했으나 현재는 활동영역이 경제·사회·정보과학·환경·여성·입법·국제교류·정부개혁·통일·도시개혁·기업경영·농업·생활협동조합 등 가히 전방위에 걸쳐있다. 당연히 조직도 방대해져 산하에 20여개 위원회와 각종 협의회, 4개 부설기관과 5개 개별기구, 30여 지역조직 등을 거느리고 있다.

대부분의 주요 시민단체들도 정도 차이 뿐 유사하다. ‘2000년 한국시민단체총람’에 따르면 시민단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산하단체는 평균 15.09개.

경희대 NGO대학원 박상필(朴祥弼) 교수는 “시민단체들이 서로 간의 주도권 다툼과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목적으로 앞다퉈 외형 키우기에 주력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다보니 전문성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방위 운동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절실한 분야는 오히려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역시 대중인기 위주의 운동경향이 낳은 소위 ‘시민운동의 편식’현상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김수현(金秀顯) 연구위원은 “시민단체들이 정치, 환경, 재벌문제 등 ‘폼’나고 결론이 쉽게 도출되는 분야에 주로 관심을 갖고, 도시빈민, 실업문제 등 민중의 생존권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며 “이젠 시민단체들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개성화, 전문화를 이루어나가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시민운동가 근무실태

시민운동의 발전과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전문 활동가의 지속적 충원이 필수. 그러나 낮은 임금, 재교육 프로그램의 부재 등 구조적 한계로 인해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젊은 피’ 수혈과 육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8월 부산 경실련은 ‘월간 참여사회’ 기고에서 “10년 경력의 사무처장, 3년을 넘은 기획부장, 1년 또는 그 미만의 간사 4명이 우리의 상근자 현황”이라며 “12개 시민단체가 소속된 부산지역시민단체협의회에도 3년 이상 경력자는 10명도 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학생운동권 출신 위주로 이뤄지던 초창기 충원방식과는 달리 요즘은 대부분 시민단체가 공채를 통해 상근자를 뽑고 있다. 높아진 시민단체 위상을 반영하듯 경실련의 지난해 공채 경쟁률은 무려 300대1. 그러나 올들어서만 4명이 그만뒀다. 경실련 관계자는 “그래도 예년보다 아주 낮은 이직율”이라고 말했다.

높은 이직율의 가장 큰 원인은 낮은 임금이다. 회원수나 수익사업의 규모에서 독보적인 서울YMCA를 제외한 대다수 시민단체의 상근자 평균임금은 월 70~80만원대. 결혼 등 생활비 상승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운동의 꿈을 접는 이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것. 재교육과 자기개발을 통해 전문가로 성장해야 하는데 열악한 재정, 과다한 일상업무로 인해 이런 기회가 봉쇄된 상황이다. 자비로 공부하는 외에 별도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시민단체는 전무한 실정이다.

대학원 졸업 후 3년째 시민단체에서 몸담고 있는 조모 씨는 “교수 등 명망가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노원명기자

■외국의 시민운동

국내에서 시민단체란 의미로 사용되는 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ㆍ비정부기관)란 말이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곳은 1946년 6월 선언된 국제연합(UN)헌장. 각국의 시민운동가들이 UN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시민단체를 배척하는 바람에 단명했다고 거세게 주장해 ‘UN산하 경제상임이사회가 책임을 지고 NGO와 협의를 할 수 있다’는 엉거주춤한 내용이 채택됐다.

세계적으로 시민단체의 위상이 급부상한 것은 국내와 80년대 이후. 동구권의 몰락, 국제 환경문제의 대두, 아시아와 남미의 민주화 열풍, 반(反)세계화 움직임 등에 힘입은 바가 컸다.

특히 99년 말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참가한 가운데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의 뉴라운드 협상의 개막식이 시민단체의 시위로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지난해 6월에는 UN 총회장에서 시민단체 대표들이 밀레니엄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시민단체란 의미로 NGO 이외에 NPO(Non-Pofit Organizationㆍ비영리기관), CSO(Civil Society Organizationㆍ시민사회단체)도 자주 사용된다.

NPO는 미국 일본 등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학교와 병원, 종교기관, 이익단체인 협회, 사회복지기관 등도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민단체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단체’라는 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어 사실 NGO나 NPO 보다는 CSO에 더 가깝다.

현재 UN에 공식 등록된 NGO는 1,500여개다. 그러나 실제 전세계에서 활동중인 시민단체는 이보다 휠씬 많다.

시민단체의 개념이 모호해 정확한 집계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시민단체의 원조로 지금도 활동중인 ‘반노예협회’(1838년)부터 시민교육을 위해 95년 결성된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한 ‘시비타스(CIVITAS)’에 이르기까지 공익적인 시민단체는 어림잡아 1만5,000여개로 회원 수는 3,000여만명, 광의의 시민단체는 수백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적인 시민단체는 백화점식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우리나라 주요 시민단체와 달리 한가지 영역을 축으로 국제연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94년 르완다 내전에서 활약한 ‘국경 없는 의사회’는 의료, 대만 핵 폐기물의 북한 반입을 저지한 ‘그린피스’는 환경, 97년 대인지뢰금지협약을 이끌어낸 ‘대인지뢰금지 국제위원회’는 평화 등 특성화된 주제에 역량을 집중, 국제적인 성가를 올리고 있다.

/김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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