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씨는 ‘비명을 찾아서’, ‘역사 속의 나그네’ 등의 소설과 ‘오장원의 가을’이라는 시집을 통해 잘 알려진 문인이지만, 경제와 과학을 중심에 놓고 현재와 미래 세계를 진단하고 처방하고 예측해온 문명비평가이기도 하다.하이에크를 연상시키는 자유지상주의(리버태리어니즘)적 경제 평론들과 도구주의적 언어관에 기초한 영어 공용어화론 등 그의 ‘과격한’ 입론들 때문에 복거일씨는 우리 지식인 사회의 주류로부터 흔히 따돌려지거나 적대시되어 왔다.
복거일씨의 문체는 그의 생각만큼 과격하지 않다. 단아하고 명료하고 깔끔한 그의 문체는 그의 글에 담긴 메시지의 과격함과 도발성을 때로는 덮고 때로는 돋보이게 하면서, 그의 글을 묘한 아우라로 감싼다.
아무튼 그는 글솜씨가 부족한 전문가들과 전문지식이 부족한 문장가들만 흔한 사회에서 전문적 담론을 잘 다져 일반인들이 먹기 편하게 요리해주는 탁월한 대중화 저자의 면모를 보여 왔다.
수년 전부터 글쓰기가 뜸했던 그가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유전자 혁명과 인류의 진화’라는 글을 발표했다.
문체는 여전히 깔끔하고 생각은 여전히 전복적이다. 복거일씨는 이 글에서 유전자 혁명의 경과를 기술하고 그 앞날을 예측하며 그 혁명에 대처하는 길을 모색한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유전자혁명의 뜻을 살필 때 인류 진화의 맥락에서 긴 시평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진화는, 긴 시평이라는 말에서 암시되듯, 사람과 기계 사이의 이종 교배로 나온 개체(사이보그)를 통한 인체의 기계화나 그것의 귀결점으로서의 초인(슈퍼맨)의 출현만이 아니라, 계급적ㆍ공간적 거리가 야기할 서로 다른 종으로의 인류의 분화, 더 나아가서 지구 생물들의 ‘물체 복제’를 통해 먼 별에서 태어나고 진화할 수도 있는, 그래서 지구 위의 생물들과 물질적 연속이 끊긴 새로운 생물체들의 경우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니까 복거일씨가 이 글에서 제기하는 것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사람인가라는 대단히 형이상학적인 질문이다.
연구 사업에서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다든가, 종교의 외투를 걸친 비과학적 믿음의 폐해를 지적하는 등, 복거일씨는 이 글에서도 그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자유주의적 유물론자의 모습을 의연히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글들에서도 그랬듯, 그는 이 글에서도 원만하게 타협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나아가 뿌리를 뽑는다.
^ 긴 시평에서 그가 상상하고 있는 미래의 ‘인류’, 외양도 심성도 우리와 전혀 닮지 않은 그 낯선 ‘인류’, 여러 종으로 나뉘고 심지어 우리와의 물질적 연속성 마저 지니지 않은 우리의 ‘후손’을 생각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음산하고 꺼림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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