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잠원동 설악아파트.낡은 상가 건물 한 켠에 최근 건설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롯데건설 본사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3층 두어평 남짓한 사장실에는 책상조차 없이 허름한 소파와 회의용 탁자만 덩그렇게 놓여 있다.
최근 잇따른 수주와 완전분양 행진으로 업계의 지도를 바꿔놓고 있는 업체 사무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초라하다. 겉치레를 싫어하는 롯데건설 임승남(林勝男ㆍ63)사장이 평소 강조해온 ‘내실경영’의 현장이다.
“사무실이 화려할 필요 있나요. 사우디 아라비아 공사 현장에서 간이 침대 펴고 생활하며 고생하던 때를 항상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무실을 화려하게 치장하는거품은 빨리 제거돼야 합니다. 업체간 신용 부재와 품질 및 안전관리의 후진성 극복도 또 다른 과제지요”
임사장은 1998년 4월 롯데건설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줄곧 ‘공격경영’을 외쳐왔다. 대학(연세대 화공과) 졸업식을 치르기도 전인 64년 7월 일본 롯데연구소에서 근무를 시작한 롯데그룹 공채 1기생이다.
81년롯데건설 중동본부장을 맡으면서부터 건설과 인연을 맺은 뒤 85년부터 5년간 롯데잠실 건설본부장, 부산롯데월드 건설본부장을 맡아 대형 공사를 성공적으로마쳤다. 롯데건설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에는 아파트 이미지 만들기에 역점을 두었다.
‘캐슬’과 ‘낙천대(樂天臺)’라는 브랜드가 대표적인 예.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는 캐슬, 일반 아파트에는 낙천대라는 브랜드를 사용했다.
낙천(樂天)은 중국어로 롯데를 가르키는 말. 첫 작품으로 내놓은 서울 강남구 서초동의‘롯데 캐슬84’는 분양가가 무려 평당 1,000만원인데도 성황리에 분양을 마쳤다. 이들 브랜드는지금도 롯데건설 약진의 견인차이기도 하다.
그는 “롯데호텔ㆍ롯데월드를 시공하면서소비자 취향에 맞는 고급형 아파트 건설을 꿈꿔 왔는데 이제 그 구상을 조금씩 실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사장이 대표로 취임한 뒤 롯데건설의 수주액은 3배로 뛰었다. 주택업계에서 ‘별 볼일 없던’롯데아파트는 어느새 웃돈이 붙는 고급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재건축 수주전에서도 업계 1, 2위를 제치고 잇따라 공사를 따내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10개단지 1만3,298가구, 1조6,390억원 어치의 재건축 공사 물량을 수주했다. 동아건설이 무너진데 이어 현대건설마저 유동성 위기를 겪는 등 덩치큰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을 때 틈새를 파고 든 전략이 효과를 본 셈이다.
그는 철마다 보름씩 전국의 공사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특유의친화력을 발휘, 밤새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폭탄주도 돌린다.
롯데건설이 내실있는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현장경영’이 중요하고 직원들을가족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이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임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특정인을 중용하지도 않는다.
그는 “특별한 인재의 힘에의존하기 보다는 여러 사람이 협력해서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강조한다. 임사장은 재건축 수주를 위한 홍보현장은 물론 입주를 앞둔 아파트, 심지어신문광고에도 직접 등장한다.
주부로 구성된 고객 서비스팀 ‘LSP(LadysService Part)’를 만든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79년 롯데햄ㆍ우유대표를 시작한 후 최고경영자(CEO) 재임만 올해로 23년째. 주거문화에 새바람을 불어 넣은 임사장이 앞으로 주택시장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지궁금하다.
■ 롯데건설은 어떤회사인가
롯데건설은 1978년 롯데그룹 계열사로 흡수된 토목 중심의 ㈜평화건업이 전신이다.
당시 정부는 평화건업이 도산위기에처하자 해외에 진출한 한국 업체의 이미지 손실을 우려해 롯데에게 인수를 권유했다.
롯데건설은 3~4년전만 해도 아파트 분양 3,300가구에 매출 7,000억원의 중견 건설업체에 불과했다. 그러나롯데건설의 잠재력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속에서 빛을 발했다.
외환위기 한파가 채 가시기 전인 1999년 2월 평당 1,000만원이넘는 ‘서초 롯데 캐슬 84’아파트를 선보이며 100% 계약률을 달성했다.
아파트 분양성적은 지난 98년 불과300가구에서 99년 2,300가구, 지난 해 6,400가구로 급신장한 후 올해는 무려 1만6,000가구 분양을 계획하고 있다.
건설업계 도급순위16위인 롯데건설은 재건축시장에서는 ‘빅3’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히고 있다. 98년 450가구에 불과했던 재건축 수주실적은 99년 6,000여 가구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 해에는 무려 1만가구로늘어났고 올해는 1만5,000가구를 목표로 잡고 있다.
김혁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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