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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표정없는 이방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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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표정없는 이방인들

입력
2001.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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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호주의 기억 중 잊을 수 없는 것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나눴던 눈웃음과 인사다. 내가 자란 곳은 인구 100만명이 넘는 큰 도시지만 그곳에선 사람들 사이에 친밀감이 있었다.부모님께서는 어려서부터 내게 낯선 사람을 만나더라도 서로 눈이 마주치면 복잡한 도심에서라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해야한다고 가르치셨고 나는 지금까지 이것은 어느 문화에서나 보편적이리라 여겨왔다.

물론 나는 서울의 종로나 강남에서 호주에서처럼 낯선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서울 시내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모두 인사를 하려면 아마 목이 뻐근할 정도로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이런 관습이 없는 것은 환경과 문화 차이 때문이겠지만, 서구 문화에서 자라난 외국인이 한국에 살면서 그런 태도를 보이는 점은 아쉽다.

여행자가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서양인들은 보통 교수나 외교관, 교사 등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이들이 더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은 왜일까.

서울의 길거리, 카페 같은 곳에서 서양인들끼리 모여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그렇지만 눈이 마주치면 낯선 한국인들에게 서로 인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들 사이에서도 친밀한 인사 장면을 구경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 정도면 괜찮다. 요즘 거리에서 마주치는 서양인들 중에는 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하며 천천히 걷다가 내 앞에 와 위 아래를 쓱 훑어보고 지나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코앞에서 고개를 홱 돌리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은 내심 내가 아는 체도 말고 인사도 하지 않으며 반대편으로 어서 사라져주길 바라는 것 같다.

내 기대가 지나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고 서로 친밀감을 표시하고 싶고 그들도 비슷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 나라에서 하듯 서로 마주쳤을 때 눈웃음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사 나누는 일 정도다.

그러나 내가 호주에서처럼 “구다이(G’Day: 좋은 하루)”라고 인사 한 뒤 돌아온 것은 냉담한 반응 뿐이었다.

대학에서도 이런 일들을 겪는다. 특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서양인 선생들로부터 이런 일을 당하면 황당할 정도다.

나는 3년이나 이 학교에 있었고 그들과 한 건물에서 일했던 적도 있었다. 나름대로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매튜, 학교에서 여러 번 만났지요? 한국에선 무슨 일해요?”라고 묻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사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이들에겐 교사보다 더 중요한 존재는 없다. 비록 아이들 장난이 심하기는 했지만 기억에 남는 이는 항상 아이들 앞에서 웃는 선생님이었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예절을 배웠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 한국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그저 단어나 문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쓰는 문화의 감정과 제스쳐도 가르치는 것인데 말이다.

한국에는 좋은 서양인 영어 교사들도 많지만, 이렇게 무심한 서양인들이 한국의 학교와 학원 각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다른 문화 속에 어울리게되면 자신의 문화가 지녀왔던 좋은 관습을 보여주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지난 토요일 서울을 돌아다녀보니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있는 서양인들을 볼 수 없었고 이태원에서만 끼리끼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그 풍경은 서로 눈웃음을 짓고 인사를 나누는 좋은 예절을, 한국에만 오면 잊어버리고 서로에게조차 냉담해지는 그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이었다. 한국에 사는 서양인들은 언제쯤 이 긴 ‘이방인 살이’를 끝낼 수 있을까.

매튜 로버트 스틸ㆍ 성균관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ㆍ호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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